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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07월02일 22시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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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 선교관터 최봉인 장로 땅이었다"
최 장로 가족들 관련 증겨 자료 제시

양화진 묘지기 최봉인 장로 부부

헤론 선교사 자신의 집뒤에 안장하면서 묘지기 시작

가족들 "지금이라도 한국교회사 바로 알리고 잡았으면 한다"

95년 동안 살다가 100주년기념사업회 시작하면서 보상 없이 퇴거

관련 단체 "나 몰라라"
 
조선인보다 조선을 더 사랑한 언더우드
, 아펜젤러, 헐버트 선교사 등이 안장되어 있는 곳 양화진.

이 땅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기 위해 헌신한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동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대해 설명을 하라고 하면 단순히 조선을 복음화 하기 위해 헌신한 선교사들의 묘원, 혹은 양화진 교회 등을 말하고 떠올린다.

문제는 단 한번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던 묘지기에 대한 것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땅이 속해 있는 양화진(현 양화진 선교관 터)에 외국인 선교사들의 묘원을 기꺼이 모신 최봉인 장로다.

최봉인 장로와 가족들이 95 동안 살았지만 100주년 기념 사업회가 생기며 아무 보상 없이 떠나야 했다.

최 장로는 서교동교회 설립 성도였으며, 1대 장로로 헌신했으며, 묘지기로 봉사하며 이곳에 묻혔다.

그 땅이 최 장로의 땅이었다는 증거는 여러 곳에 드러나 있다. 당시 오고간 편지와 신문 및 각종 자료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묘지기를 하며 자신의 모든 재산을 아낌없이 드렸던 최 장로.

이제 그의 가족들이 한국교회사를 바로 알리고 잡기 위해 나서고 있다.

최 장로의 손자 며느리 최지연 사모(시애틀베다니교회, 샛별한국문화원 원장)100주년기념교회와 유니온교회가 법적 대립을 한창 하던 2012년 국가외교문서를 통해 선교관 자리가 할아버지 땅이라는 증거를 찾았음을 알린 바 있다,

이와 함께 할아버지의 신앙과 헌신을 기리는 동시에 하나님 영광과 대한민국 기독교 발전을 위해 헌납하기로 결정해 최봉인장로기념사업회를 시작했음을 설명했다.

그리고 7년 동안 세상법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의 법으로 풀고자 노력했음을 거듭 밝혔다.

최 사모는 그리스도의 겸손과 희생으로 타협하려 했으나 결론을 얻지 못해 참으로 안타까운 7년을 보냈다면서세상 법으로 가보려고도 했으나, 다시 한 번 세상법정이 아닌 선한방법으로 해결책을 찾고자 이 자리에 섰다. 끝까지 하나님의 방법으로 가고, 오직 하나님 영광 받으시길 기도한다고 밝혔다.

촤 장로의 가족들은 최봉인 장로에 대한 역사를 바로 써달라(최봉인 장로가 소유주였고, 자손들이 대한민국 기독교발전을 위해 재산을 헌납했다) 선교관 2층 예배당을 최봉인 장로 기념예배당으로 명칭을 바꿔 달라 양화진을 연구하고자 하는 신학생이나 교수, 연구팀들에게 공간을 사용케 해 달라 최봉인 장로 후손들이 출판기념회나 추모음악회를 열게 해 달라 세계로 나가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 선교사들의 친정집으로 사용하고(선교보고, 각종 선교사 모임), 미래의 선교사를 키우는 일에 사용해 달라 주일과 수요일 등은 백주년교회가 쓰고, 백주년교회가 쓰지 않는 시간에는 선교사들이 사용하게 해 달라 유니온교회의 특별한 행사 때 장소를 제공해 달라 등을 요구했다.

최 사모는 이러한 요구들이 후손들이 돈을 달라고 하거나 땅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고 분명히 했다.

최 사모와 후손들이 양화진 선교관이 세워진 땅을 최봉인 장로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마포구 합정동 144 주소에는 최봉인 장로와 그 자손들만 살았을 뿐 다른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 역사적인 기록 때문이다. 또한 국가외교문서 외아문일기를 제시했다. 이 문서는 18961031일에 발행된 독립신문 기사 중 이곳은 개인 자산이 아니라 모든 외국인들을 위해 제공된 땅이다라는 보도를 보고, 5개 공사 대표인 러시아 공사 위베르에게 자신이 산 가로 70, 세로 100(200) 땅에 대한 소유를 문서로 작성해 달라고 요청하자, 위베르가 외부대신 이완용에게, 이완용이 내무대신 이재순에게, 이재순이 관할청 홍현택에게, 홍현택이 이재순, 이재순이 이완용, 이완용이 위베르에게 전달한 문서와 답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내무대신 이재순은 감검관이 땅을 산 것은 인정하나 둘레가 불과 몇 십보에 지나지 않는다. 그 앞은 국유지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귀 대신이 알아서 대답해 달라고 했고, 외무대신 이완용은 위베르에게 같은 말로 산 것은 인정하니, 귀 대신이 알아서 문장의 귀결을 지어 전대 달라고 하는 내용으로 국가 외구문서로 내무대신 이재순 도장이 찍혀 있다.

최 사모는 이러한 증거와 관련 “10평이든, 천 평이든 땅을 산 것을 인정하고 도장을 찍은 것이라며, 할아버지인 최봉인 장로에게 소유권이 있었음을 거듭 밝혔다.

최 사모는 또 최봉인이라는 이름이 직접적으로 없고, 감검관 혹은 관리인이라고만 되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마포구 합정동 144에는 다른 사람이 살았다는 기록이 없다, “1905년 생인 시아버지부터 시누이, 시아주버님 모두 그 집에서 태어났다고 밝혔다.

또한 193111월호에 실린 홉스 선교사의 글 중 매달 급여를 받는 관리인이 그 위에 살면서 무덤들을 돌보고 있다는 부분과 1927년 매일신보 520일자 양화진묘지는 옛날 이태왕전하로부터 외국인들에게 지로 사용하라고 하사하신 것이니 그 모는 보성전학교 교수 최등만씨의 부친 최봉인씨가 약 삼십년 전부터 맡아서 간호하여 내려오는 중이라는 기사를 반박자료로 제시했다.

이와 함께 선교사 일기에 관리인 최봉인 이라는 이름이 여러 곳에 등장하고 있는 것도 감검관이 최봉인 장로였음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최 사모는 "1900년대 초, 1년에 묘가 약 80개 씩 늘어나자 시할아버지는 하인 소작인들과 함께 묘를 관리하셨다""묘지회에서 돈을 받았으나 일제 때 선교사들이 다 쫓겨 나간 후에도 긴 세월 동안 수 백개의 묘를 믿음으로 관리하셨다"고 말했다.

그가 양화진 묘원을 돌보게 된 계기는 의료선교를 펼쳤던 헤론 선교사의 죽음이었다고 한다. 최 장로는 죽은 헤론 선교사를 자신의 집 뒤에 묻었고, 이후 선교사들의 무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선교사들은 그에게 감검관(묘지기)이라는 직분을 주었다고 최 사모는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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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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