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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
김병렬 목사, 찬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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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렬 기자 작성일21-11-3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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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렬 목사, 찬양교회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오늘 말씀에는 인생에 좋은 날도 있고 그렇지 못한 날도 있음을 알려 줍니다. 즉 우리의 인생은 항상 좋은 날만 있거나 반대로 항상 나쁜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며 곤고한 날에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되돌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때 ‘형통’이라는 단어는 ‘번영’, ‘행복’, ‘좋은 일’, ‘복된 일’등 긍정적인 모든 일을 포괄하는 표현인 반면에 ‘곤고’라는 단어는 ‘비참’, ‘불행’, ‘괴로움’ 등 인생에서 겪는 모든 종류의 부정적인 일을 포괄하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전도자는 반대되는 두 단어를 병행시켜 인생에 있어서 일들이 잘 풀릴 때와 그렇지 못한 때를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형통과 곤고는 나름대로 모두 유익을 줍니다. 

즉 형통의 날은 인생을 기쁨의 자리로 인도하고 곤고의 날은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깊은 성찰과 반성의 자리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하나님께서 병행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내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내 삶을 형통하게 할 수 없고,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곤고한 날을 피할 수도 없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게 하시기 때문에 사람은 형통한 날에 교만해서는 안 되며 또한 곤고한 날에 좌절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오늘 내가 형통하다는 것은, 내일 내 삶에 곤고한 날이 올 수 있기 때문에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소위 잘 나갈 때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반대로 오늘 내 삶에 곤고한 날을 만나더라도 너무 좌절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일 내 삶 가운데 형통을 예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형통한 날 다음에 곤고한 날이 오는데, 사람으로서는 그 때가 언제일는지 알 수 없습니다. 즉 사람은 자신의 앞 날을 살필 수도, 알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삶을 무조건 낙관만 해서도 안 되며 반대로 비관만 해서도 안 됩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기에 내일을 아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사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궁극적으로 사람은 자신에게 이루어진 일에 대하여 자의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 일에 내포된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이를 수용하려는 겸허한 태도를 갖추어야 함은 물론 자신의 장래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신본주의적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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