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육의 현황과 한국교회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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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23-02-28 22:07본문
이후정 총장
(감리교신학대학교)
1. 신학교육은 하나님의 종들을 훈련, 양육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선한 목사, 참된 성직자를 키우는 사명을 목적으로 한다. 오늘 한국교회의 역사적인 상황은 코로나 이후로 더 심각한 교회의 위기와 수적, 양적 감소 속에서 신학교 전반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도전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문제는 앞으로 한국교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대한 이슈의 하나가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가장 극심한 고난과 환난의 시대에 하나님은 오히려 그의 위대하신 계획을 선지자들에게 계시하시고 보여주셨다. 중세 말기나 계몽주의의 황폐 속에서 종교개혁자들이나 존 웨슬리 같은 빛의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서 개혁과 부흥, 갱신의 놀라운 새 시대를 여신 것을 기억해야 될 것이다. 따라서 오늘 한국교회의 신학교육은 낙담, 좌절 대신에 희망과 환상을 품고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도를 새롭게 경험하는 것에서 답을 찾아야 될 줄로 믿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교회를 살릴 수 있는 미래의 목회자상을 목표로 하여 신학교육의 현실을 바르게 직시하고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신학교육의 근본 기초가 되는 것은 1) 영성형성(spiritual formation), 2) 인격형성(character formation), 3) 전문적 형성(professional formation)의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초대교회 전통에서 신학교육은 아직 공식적인 학교의 형태를 가지지 않았고, 주로 교회나 수도원을 통해 영적 훈련을 받는 인격적인 멘토링, 지도의 방식을 취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영적인 아들로 언급하면서 장로들의 회에서 안수 받은 은사와 교회의 영적 가르침(교리)을 전수하는 것에 대해 중점을 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중세 이후에 교회의 신학교육이 대학교 내지는 세미나리라고 하는 전문적인 학문의 기관을 통해 좀 더 이성 중심의 합리주의의 형태를 취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학문적인 측면은 신학을 너무 객관적, 개념적인 경향으로 발전하게 만들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원천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개혁의 원리를 통해 학문적, 이론적인 측면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믿음과 영적, 실천적인 훈련에 더 목회자 교육을 돌이키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신학이 지나치게 이성 중심의 패러다임에 치우친 데서 구출되어 설교와 말씀의 묵상과 영성(경건)에 중점을 두도록 바른 교정을 가했던 것이다. 나아가서 목회적인 차원의 전문적인 훈련이 오히려 신학교육에 더 중요성을 가져야 함을 회복하려 했다고 본다.
근대 이후의 신학교육은, 하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시 학문성이라는 명목으로 지성주의와 합리주의에 상당히 경도됨을 피하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주의의 관점에서 신학교육의 개혁이라는 과제를 심각하게 숙고해야 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어떻게 신학교육을 개혁함으로써 교회가 간절히 바라는 선한 목자, 참된 성직자를 배출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위해 교회는 더 많이 열심히 기도하며 신실하고 준비된 인재들을 찾아 신학교에 맡기고, 신학교는 이에 응답하여 모든 노력과 분투를 다하여 교회를 살리는 목회자들을 훈련, 양육하는데 집중해야 될 것이다. 먼저 현행의 잘못된 신학교육의 폐해들을 적시하여 청산하는데 수고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서 가장 바람직하고 적절한 신학교육의 형태를 창출해 내는데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3. 영성형성은 신학교육에서 우선위를 차지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종인 목회자는 무엇보다도 영적인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권위를 갖추지 못한 목자는 교회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자명한 사실이다. 이미 신학교에 오기 전에 은혜를 체험하거나 분명한 소명을 품고 찾아왔지만, 많은 신학도들이 영적인 혼란이나 실망과 좌절을 경험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이 기대했던 영적인 높이와 분위기, 훈련의 적절함 등이 결여되는 수가 많았던 것이다. 과거에 신학교는 우선 학문적인 책임을 지고 있으므로, 영성과 경건의 부분은 실천적이라는 명목으로 교회에서 목회자들에게 배워야 한다고 가이드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경건주의의 아버지 쉬페너(Spener)의 올바른 지적처럼 신학교 교수들은 경건의 사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어려운 문제를 야기한다. 교수들은 아카데믹한데 전념해 왔으므로, 경건이 약하다는 비난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결함은 극복되어야 하며, 본회퍼의 핑겐발데의 신학교육에서처럼, 경건 훈련을 할 수 있는 본이 되는 영적 스승들이 되어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근래에 신학교육에 있어서 영성부분이 상당히 주목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강화된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신학의 제 분야에 있어서도 영성의 관점에 새로운 관심이 증가되어 왔다. 신학 자체의 정의조차도 단순히 이론과 개념에 치우친 사변적인 학문이 되어서는 안 되며, 실천 및 영성과 조화 내지는 통합을 이루는 연결(conjunction)의 패러다임이 과거의 단절 내지는 대립(disjunction)의 형태를 대신해야 한다는 요청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목회현장에서 요청되는 신학교육에서의 적절한 영성훈련의 체계를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다듬어 나가야 하리라고 본다. 그리하여 신학교에서부터 영성의 규율과 규칙에 따른 성화의 삶이 터 닦여짐으로써 일생에 걸친 목회자의 길에 기본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카톨릭처럼 전문적인 영성지도가 이뤄지려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개신교 나름대로의 말씀 중심의 묵상훈련과 수준 높은 기도생활의 가이드가 이뤄지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이 점에서 훌륭한 목회자들과의 바람직한 협력 방식을 주의 깊게 검토해 나가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4. 인격 혹은 성품의 형성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처한 도덕적인 위기와 함께 중요한 미래 신학교육의 또 다른 핵심을 이룬다. 특별한 카리스마와 행정력, 설교를 포함한 목회의 여러 가지 품격들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도덕적인 면에서 성숙하지 못할 경우 교회는 목회자를 신뢰하거나 존경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신학교육에서 미래 목회자의 인격과 성품을 연단하여 온전한 지도자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인격의 문제는 하루 이틀의 강조와 권면을 통해 해결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것은 긴 시간의 인내를 동반한 수양, 혹은 수련의 차원을 요구한다. 방법론적으로 초대교회 이후 교회는 이를 위해 금욕주의 혹은 수덕신학의 차원을 윤리적인 성숙과 통합적으로 추구해 왔다. 인간의 욕망(정욕)을 다스리고 제어하는 훈련을 수도원적인 세팅에서 발전시켜 왔던 것이다. 단순히 열심히 기도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면의 성찰과 검토, 인격적인 성품의 도야와 수덕(修德)은 중요한 성직자 됨의 요건이었다.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참 인간이며 새로운 인간성의 푯대인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도달하는 성화의 훈련을 통해 온전하고 성숙한 인간성을 목표로 하는 것은 구원의 완성과도 깊이 연관되는 차원이다. 목회자가 본이 되어 도덕적인 영향력을 크게 미칠 때, 교회는 비로소 세상의 빛과 그리스도의 향기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인격의 모델이 그리스도의 인격이라면, 동시에 그것은 바울 서신에서 성령의 열매로서 잘 설명되고 있다고 본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의 열매는 성령을 따라 살고 행하는 그리스도인의 윤리적인 완성을 지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육체를 따라 죄악된 정욕의 지배를 받는 옛 사람의 성품과 삶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새 인간성을 충만히 옷 입음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자기부인(부정)의 훈련을 십자가의 도로 온전히 통과할 때에야 목회자는 성화된 도덕적 인격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그러므로 신학교육은 십자가의 훈련을 모색하여 윤리적인 성숙을 갖춘 인격적인 지도자들을 양육해 내야 될 것이다. 이것은 단지 신학교의 훈련에서 끝나거나 성취되는 것이 될 수 없고, 목회자의 일생에 걸친 자기수양과 연단을 통해 추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아가서 목회자 형성에 있어서 신학교 교육 중 혹은 이후의 교회의 신실한 슈퍼비전도 심도 있게 재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5. 전문적인 형성은 목회자적 형성(pastoral formation)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육신의 치유자인 의학도가 수련을 하는 과정에서 단지 책과 이론적 강의를 통해서만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전문가적 실습을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영혼의 치유자요 지도하는 목자가 될 신학도는 마찬가지로 목회의 현장인 교회에서 직접 목회의 실제를 접하면서 신학교에서의 연구와 병합시켜야 할 것이다. 이미 서두에서 논급하였듯이, 신학교육이 이론적인 학문 연구에 치우칠 때 가져온 폐해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체험과 실패를 겪어온 것이다. 오늘날 신학교 커리큘럼 상에서도 그동안 많은 변화와 수정이 이뤄져 왔지만, 아직도 목회의 실천적 훈련 부분에 관해서는 상당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설교와 예배, 행정과 규율(법규), 목회상담과 영적 지도(멘토링), 전도(선교)와 교육 등의 총체적인 목회자적 자질에 더 많은 시간과 힘을 기울여야 미래의 목회자를 양육하는 일에 성공할 줄 믿는다.
신학교육에서 통상적으로 이론적인 분야라고 여겨지는 성서, 조직, 역사 신학의 경우에도 교회의 목회 현장과 지속적인 대화와 연관 지음을 추구하는 것이 요청된다. 그 관계성이 바르게 또한 긍정적으로 세워져 나갈 때, 미래의 목회자는 자신의 소명에 대해 더욱 든든한 지반을 구축하며 실천적인 준비와 자격을 갖춰나간다는 확신을 지니게 될 것이다. 나아가서 오늘날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사회적 섬김과 윤리적인 책임성에 대한 훈련도 중요한 차원이다. 신학교 시절에 실습과정을 통해 고통 받는 자들, 가난하고 억압 받는 사람들, 병들고 버림 받은 사람들에 대한 돌봄과 치유의 사역을 배우게 될 때, 목회 현장에 나가서 자비와 베품, 환대의 역할을 하나님 나라의 종으로서 충실하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목회의 사역은 내적으로는 교회의 영적, 공동체적 하나님 나라의 구현의 차원과 외적으로는 세상의 빛이 되어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 정의와 하나님의 통치를 체현하는 차원의 성육신적인 통합과 균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6. 결론적으로 한국교회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목자들의 양육과 훈련을 맡은 오늘의 신학교육은 참으로 지난한 현실의 도전 속에 있음을 통감하게 된다. 교회 전체의 성장둔화, 물질만능주의와 세속화 속에서 청년들의 교회에 대한 무관심, 한국의 청소년 인구의 점진적 급감 등을 어두운 불안감 속에서 무겁게 짐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새 일을 창조하시는 경이와 기적의 하나님이시다. 믿음을 가지고 전혀 불가능하게 보이는 현실 앞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계시를 주목하고 붙들 때, 꿈과 비전을 품고 희망의 기대 속에서 신학교육을 견고하게 세우고 개혁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올지라도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사명을 기도 속에서 지켜나가길 소원한다. 예언자적 통찰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위대한 역사를 가지고 지켜온 한국교회를 다시 세우시고 부흥케 하시길 간절히 기도하며 발제를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