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 살을 에는 바람과 파도 속에서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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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23-02-28 22:15본문
: 아포리아 시대에서의 신학교육에 대한 단상
김운용 총장(장로회신학대학교, 예배/설교학)
고통의 끝에/ 문이 있었어요...
내 삶의 중심에서/ 담청색 바닷물에 얹힌 심청색 그림자들
커다란 샘물이 솟았지요
-루이즈 글릭
파도의 꼭지점, 꽉 잡고 버티자?
1.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 막부(江戸 幕府)가 일본을 통치한 1600년대 초부터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무너질 때까지 약 250여 년의 기간을 가리켜 에도(江戸) 시대, 혹은 도쿠가와(徳川) 시대라고 지칭한다. 이 시기에 일본은 경제 발전과 문화적 번영을 이루었다. 사회 안정을 최고 국시로 삼고 쇄국정책을 펼쳐 외부 세력의 출입을 봉쇄하였고, 인구는 꾸준하게 증가하였으며, 다양하고 아름다운 문화가 꽃을 피웠다. 19세기 후반, 문호 개방과 함께 대표적 목판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작품이 서양에 소개되면서 널리 명성을 얻었다. 그의 대표 작품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후지산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후지산의 36경”(1831년)이 있다.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라는 작품은 그 가운데 한편이다.
2. 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거대한 파도이다. 자세히 보면 파도 사이로 풍랑에 휩쓸린 배 세척을 볼 수 있다. 당시 살아있는 생선을 빠르게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주 속도가 빠른 배이다. 생선을 내려놓고 돌아오는 길인지 빈 모습인데, 8명이 노를 젓고 있고, 배의 앞부분에는 2명의 선원이 타고 있다. 이 배의 길이가 12m 정도였다니 높이가 대략 15m가 훨씬 넘는 거대한 파도이다. 이들이 거센 풍랑에서 빠져나갈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이다. 그러나 대자연은 인간의 절망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멀리 보이는 눈 덮인 후지산은 그들의 사투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서 있다.
3. 이 그림을 보다가 영감을 받아 드뷔시는 그의 교향시, “바다”를 작곡했고, 김응교 시인은 “파도 아가리”라는 시를 썼다. “냉혹한 물 튀김/ 카메라가 없었던 에도 시대/ 화가의 눈은 튀는 물방울을 주시한다/ 1만분의 1초를 포착하는 디지털 눈// 해발 3,776m의 후지산을 삼킬 듯 덤벼드는 파도/ 마구 흔들리는 세 척 생선잡이 조각배에/ 사공들이 아가리 앞에 납작 엎드렸다/ 버티자 꽉 잡아// 괴물이 침을 슬어 놓고/ 영산(靈山)은 묵묵히 버티고 있는 이 그림을 보고/ 드뷔시는 교향곡 ‘바다’를 작곡했다지// 침묵 바다에 물결 퍼지고 해일이 몰려온다/ 운명 앞에는 붉은 잔양(殘陽)은 예견 못 할 미래 마냥/ 음산하다/ 치솟는 파도의 꼭지점/ 교향곡의 절정에서/ 까마득 뱃멀미 앓으며 소리친다/ 지구의 모든 존재들아/ 버티자 꽉 잡아.”
4. 음산하고 흉흉한 바다에 서 있지만 치솟는 파도의 꼭지점”에서 ‘꽉 잡고 잘 버티자’는 시인의 외침이 가슴에 깊이 와닿는다. 그 권면이 고맙고 그 외침에 깊은 여운으로 남는 것은 오늘 우리도 교회와 사역을 모두 삼켜 버릴 듯한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버티는 것, 그 이상의 것이 요구된다. 우리는 주님의 교회를 세우고, 사람들을 주님의 보좌 앞에 세우고, 사역을 세워야 하는 사명자이고, 말씀으로 이 어두운 시대를 밝혀가야 하는 사역자들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작은 바이러스가 온 지구촌을 흔들면서 많은 것을 멈춰 세운 지 벌써 3년째이고, 사역의 현장에도, 신학교육의 현장에도 많은 변화가 예고 되고 있다. 과거의 표준과 전통적인 요소들이 더는 통하지 않고 새로운 가치 표준이 주도하는 시대, 소위 ‘뉴노멀’ 시대의 도래가 예견된다.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관점과 기준을 요구하면서 신학뿐 아니라 목회 사역에 대한 소위 “재개념화”(reconceptualization)를 강력하게 요구받고 있다.
위기보다 더 어려운 때
5. 신학교육 현장의 위기는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작년 주요 신학대학원이 미달 사태가 속출하였고, 이런 결과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더 가증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형태의 신학교육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미래가 불투명하다. 박상진의 분석대로 한국의 신학교육은 “다중적 위기”에 처해 있음이 분명하다. 모든 것을 넉넉히 잠재워버릴 만한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늘 파도는 있었고, 앞으로 있을 것이기에 시인 김명수의 외침이 정겹다. “쓰러지는 사람아 바다를 보라/ 일어서는 사람아 바다를 보라/ 쓰러지기 위해 일어서는/ 일어서기 위해 쓰러지는/ 현란한 반전/ 슬픔도 눈물도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어야’ 한단다. 밀려오는 파도의 실체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파도타기 기술이 필요한 때란다.
6. 먼저는 밀려오는 인구통계학적 파도를 들 수 있다. 세계 인구는 “2022년 79억 7천만 명으로 1970년 대비 2.2배 수준으로 증가, 2070년에는 103억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지만, 한국 인구는 “2022년 5천 2백만 명에서 2070년에는 3천 8백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생산연령인구 구성비는 1970년 54.4%에서 2012년 73.4%을 정점으로 감소하여 2022년 71.0%, 2040년 56.8%, 2070년에는 46.1% 수준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세계 인구 중 고령인구 구성비는 2022년 9.8%에서 2070년 20.1%로 증가하는 반면, 한국의 경우는 2022년 17.5%로 1970년(3.1%) 대비 6배 수준으로 증가하였고, 2070년에는 46.4%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면서 학령인구의 감소도 갈수록 심각해 지고 있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유소년인구는 2020년 631만 명에서 향후 10년간 198만 명 감소하고, 2070년 282만 명으로 전망했으며, 학령인구(6~21세)는 2020년 789만 명에서 향후 10년간 195만 명 감소하고, 2070년에 328만 명 수준일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대학 학령인구(18-21세)는 2017년 264만 명, 2020년 241만 명, 2030년 187만 명으로 2020년의 77.7% 수준에 이를 것이며, 대학진학 대상이 되는 18세 인구는 2020년 52만 명에서 2030년 47만 명으로 2020년 대비 90.9%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7. 탈종교화와 세속화 파도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그 파고는 더 높아가고 있다. 이것은 서구사회가 먼저 경험했고,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뚜렷한 종교적, 사회적 현상 중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2021년에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에 의하면 종교가 있다고 답한 종교인은 2004년에 54%로 정점으로 찍은 이후 꾸준히 감소하여 2014년에 50%, 2021년에는 40%로 줄었다. 2000년대 이후 종교인 감소의 가장 큰 요인은 청년층이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20대의 경우, 2004년은 45%, 2014년에는 31%, 2021년에는 22%가 ‘종교가 있다’고 답을 했다. 30대의 종교인 비율 역시 2004년 49%, 2014년 38%, 2021년 30%로 감소했다. 이러한 청년과 청소년 세대의 탈(脫)종교화 현상은 두드러지고 종교인구의 고령화와 전체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종교 분포도를 보면 개신교 17%, 불교 16%, 천주교 6%이지만, 비종교인이 호감을 갖는 종교로는 불교 20%, 천주교 13%, 개신교 6%로 나타났다. 비종교인 중 ‘호감 종교가 없다’고 답한 비율도 2004년에는 33%, 2014년에는 46%, 2021년에는 61%로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2014년 대비 종교인의 종교 활동은 전반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를 믿는 사람도 남성(34%)보다 여성(56%)이 높았고, 고연령대일수록 높은 수치를 보였는데, 20대가 22%인 반면 60대 이상 59%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개인 생활에 종교가 중요하다’는 인식 또한 1984년에 68%였던 것이 2014년에 52%로, 2021년에는 38%로 하향하고 있고, 비종교인의 89%는 개인 생활에 종교가 중요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종교인과 비종교인 모두에게 생활 속 종교 중요성이 약해졌음을 보여준다.
비종교인의 개신교 호감도 역시 2004년 37%에서 2021년에는 20%로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비종교인의 과거 신앙 경험을 묻는 질문에서 가장 최근에 어느 종교를 믿었는지 물은 항목에서는 52%가 '개신교', 38%가 '불교', 11%가 '천주교'라고 답했다. 개신교는 다른 종교보다 포교 활동에 적극적이지만 이탈자도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8. 교회 관련 파도도 간과할 수 있다. 한국교회 신뢰도 추락에 대해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신뢰도가 추락하니 자연스럽게 신학교 진학도 관심이 약화 된다. 교회학교의 수적 감소도 심각하다. 통합측의 경우에도 지난 10년 사이에 초등학생은 36.7%가 감소하였고, 중고등학생의 경우는 38.9%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학령인구 감소보다 교회학교 학생 수 감소가 신학교 진학율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신학교육 자체의 위기 현상 역시 심각하다. 교단 분열로 인한 신학교의 난립과 목회자 양성에서의 질적 저하 문제, 목회현장과 유리된 이론 중심의 신학교육, 신학교 난립으로 인한 교육 질적 저하, 교회와 신학교 간의 협력 관계, 이론 중심으로 교육으로 목회 현장과의 괴리현상, 인성과 소명 기반 교육 약화 등의 문제 등 내부적 문제도 산재되어 있다. 에드워드 팔리(Edward Farley)가 말한 대로 오늘의 신학교들은 불경기로 대단히 심한 압박을 받고 있어 존재와 생존에 치여 다른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다.
깊어지는 아포리아 시대에
9. ‘위기’(危機)라는 말에도 무거움이 가득하지만 위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을 흔히 우리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몸과 목숨이 끊어질 상황, “죽을 정도로 사정이 어렵고 힘들거나, 또는 처한 상황이 위태로움을 비유”하기 위해 쓰는 용어이다. 옛날 그리스에서도 이런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아포리아’(ἀπορία)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빠져나갈 길이 없음, 막다른 골목, 미궁,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등을 뜻할 때 사용했던 단어이다.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그리스인들은 이 단어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스 사람들은 항해 중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아 더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위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에 처했을 때를 ‘아포리아’라고 했다. 김상근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포리아는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태’(Lack of Resources), 즉 ‘길 없음(Impasse)의 상태’이자 ‘출구 없음(No Exit)의 상태’를 뜻한다. 이것은 위기(Crisis)보다 더 심각한 상태다. 위기 상황에서는 그래도 어떤 조치를 취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아포리아는 더이상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다. 아포리아 상태에서 우리는 망연자실한 채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비로소 절감하게 된다. 그리스에서 생겨난 이 말의 원래 뜻은 ‘막다른 곳에 다다름’이다.
10. 그리스가 직면한 아포리아 상황을 김상근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한다. 그 첫 번째가 페르시아 전쟁이었다면, 전쟁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밀어닥친 두 번째 아포리아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었다. 기원전 5세기는 “참혹한 전쟁이 두 번이나 발발했던 죽음과 폭력의 시기”였다. 펠로폰네소스 내전은 그들에겐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호메로스 서사시를 함께 읊던 동족끼리, 같은 언어를 쓰는 피붙이끼리, 올림픽에서 함께 뛰며 선의의 경쟁을 펼치던 친족끼리 서로 죽이는 비극의 전쟁이었다. 세 번째는 BC 399년에 독배를 마시고 최후를 맞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든다. 진리가 무너지는 시대, “진정한 군주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 리더의 위치에 오르면”서 발생한 문제였다.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그 시대는 아포리아에 빠진다. “행복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가진 왕”과 “명예욕에 불타올라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킨 군주,” “물질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장군”이 나라를 이끌게 되면서 쇄락하게 되는 아포리아에 빠진 것으로 분석한다.
김상근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은 그 어려움의 시간에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답을 인문학에서 찾았다. 그때 기록된 책이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플라톤의 『국가』 등이었는데, 아포리아 시대의 필독서, “군주의 거울”(Mirror for Princes)이었다. 군주나 귀족의 자제들, 즉 그 시대의 지도자들이 자신을 비춰보며 본받아야 할 지침으로 삼았다. 플라톤의 제자 크세노폰은 『키루스의 교육』에서 ‘군주의 거울’을 제시하면서 페르시아 왕 키루스(고레스)가 꿈꾸던 제국은 건물의 총합이 아니라 사람이었고, 인재였다고 주장한다. 지도자들이 그런 “인재를 모으는 방식은 본인 스스로 그런 모범적인 삶을 사는 것”이었고, 군주의 거울은 그의 삶 자체였다.
11. 후스토 곤잘레스는 ‘신학교육의 역사’를 제시한 책에서 오늘의 신학교육을 반성적으로 고찰하면서 현재 우리가 직면하는 새로운 시대는 “신학공부와 목회자 양성에 대한 총체적인 방향 전환과 그 개념에 대한 재정의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위기 시대에 신학교육의 사명을 부여 받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새롭게 할 것이며,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짧은 발제에서 신학교육과 관련한 불평에 대한 해답과 대안을 제시하기도 어렵고, 간략하게 지시하는 이것들을 완벽한 해답이나 제언이 될 수 없을 것이지만 출구와 해법을 찾아가는데 작은 팁과 단상을 정리하고자 한다.
12. 첫째는 신학교육의 목적과 비전을 다시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흔히 신학교육은 목회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과정, 혹은 라이센스를 받는 과정 정도로 생각하지만 협의적 이해를 넘어 더 포괄적인 이해로 나아가야 한다. 곤잘레스는 신학교육이 성직자 만들기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신학공부는 교회와 교회의 모든 성도가 공동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 계명을 통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온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며, 이런 신학공부는 성도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이다... 단순히 학과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비추어 하나님의 관점에서(교회 공동체의 삶을 포함한) 모든 것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기 위해 신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삶 전체의 일부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온 마음과 뜻을 다한 사랑의 표현으로서 성경과 신학 공부가 갖는 근본적 측면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오늘 신학교육은 분명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훈련하여 파송함으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신학교는 선지동산과 대학의 중간 지점에서 엉거주춤하게 서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신학교육은 마케팅이나 경영기법, 전문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과는 다를 수밖에 없어야 한다. 협의적 관점에서 보면 신학교는 교육과정을 통해 교단이 추구하는 목회자상을 구현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학생 선발, 교육을 통해 신학교는 교단의 목회자 후보생을 양육하여 교단의 구성원으로 파송하는 것이며, 교단의 일체감과 통합(intergration)을 이루며, 교단을 새롭게 세워갈 뿐만 아니라 개혁해 가야 하는 사명을 가진다. 광의적 관점에서는 교단 신학과 목회자 양성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을 양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교단의 특성을 갖출 수 밖에 없어야 하지만 그 울타리를 뛰어넘어야 한다. 오랜 전 위르겐 몰트만은 교파신학을 넘어 에큐메니컬 신학으로 이행을 촉구하면서 에큐메니컬 관점을 “특수한 사고를 보편적 사고 속에 지양하는 것이며, 더이상 자신의 일부를 전체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전체를 공동적인 전체 속에 끼워 넣는 것”으로, “신학적 문서를 교파적 특성에 비추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성경에 비추어서 평가하고 공동적 문서로 간주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고립되면 경직되고 경직되면 죽는다”고 조언한다.
13. 둘째, 신학교육에 있어서 분리 현상을 넘어 통전성(integral, holistic)을 지향해야 한다. 신학교육에는 파편화 현상이 극심하다. 흔히 신학교육의 현장에 있다 보니 가끔 ‘신학교에서 배울 것은 목회 현장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학교에서 배운 것은 내려놓으니 교회가 부흥하더라’와 같은 막말(?)을 들을 때도 있고, ‘신학교 무용론’을 주장하는 소리도 듣게 된다. 충분히 반박할 수 있지만 오히려 책임감으로 수용하곤 하였다. 그리될 수 없는데, 신학교육과 목회 현장 간의 심각한 분리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신학교육의 현장에는 심각한 분리 현상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교육목적과 교육과정의 분리, 신학 학문 내의 분리, 이론과 실천의 분리, 학문과 상황과의 분리,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분리, 교수와 학생 간의 세대 분리, 교회와 세상과의 분리 현상 등을 극복해야 한다. 신학교육의 파편화가 심각하다. 신학은 사라지고 그 하위구조로 뿔뿔이 나누어져 있다. 신학의 통전성은 신학교육에서 반드시 회복해야 할 요소이다. 에드워드 팔리 역시 이것을 신학교육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로 지적한다. 전체적 종합(unity)이 아니라 파편들로 존재하며, 다양한 지식의 모음인 백과사전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14. 셋째, 현장 역량 강화 및 실천지향적 신학교육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 신학교는 기술을 가르치는 전문학교는 아니지만 현장과 유리된 학문 유희에 빠져서도 안되며, 지나친 이론 중심의 교육으로도 안된다. 신학은 교회를 위한 학문이어야 하고, 신학교육이 실천지향적 목회자 양성과정이 되어야 한다. 이는 지적 호기심 만족이나 단순한 학술 탐구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목회자 양성과 목회역량 함양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목회기술이나 노하우를 가르치는 실용적 직업교육을 시행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학은 목회 지향적, 실천 지향적인 현장성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신학교육은 실천을 통한 교육이 되어야 하며, 목회를 위한 배움(learning for ministry)이 아니라 목회 안에서의 배움(learning in ministry)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실천성을 담보하기 위해 신학교육에서 인턴십에 대한 제도를 보다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15. 넷째, 신학교육은 하나님 알기, 성 삼위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와 교제라는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한다. 신학교육은 학문 전달이 아니라 하나님 알기, 즉 영성을 토대를 이루어야 한다. 2000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분리와 통합이라는 축을 오가면서 진행된 것이 사실이지만 계몽주의 이후 서구 신학에도 이런 분리 현상이 뚜렷하였다. 현요한은 종교개혁자들은 “학문과 영성, 이론과 실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분리되지 않았었다”면서 신학은 “단지 하나님에 대한 말과 논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요, 실천과 영성이 함께 관련된 것이요, 살아가는 삶 자체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성경은 학자라는 말 대신에 ‘제자’(μαθητής), ‘본받는 자’(μιμηταὶ)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신학도는 배우는 자이기에 결국 신학교육은 “하나님 배우기, 하나님 알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주입 시키는 교육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결국 신학교육은 영성과 인성을 함양하는 교육이어야 하고, 교회를 세우는 실천지향성을 가진다. 세계신학교육협의회(WOCATI) 명예회장이자 정교회 신학자인 페트로스 바실리아디스(Petros Vassiliadis)가 지식함양에 중점을 둔 서구교회 신학교육을 비판하면서 신학교육은 성례전 공동체의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모든 신학은 하나님을 향한 영광의 찬송(doxology)가 되어야 한다는 점과 맥락을 함께 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전달과 습득이 목적이 아니라 영광의 찬송이 되어야 한다.
다시 복음, 다시 첫사랑
16.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60여 년이 지나가던 때, 로마제국의 여러 지역에 교회가 세워졌지만, 당시 교회는 최고의 위기 상황을 경험하고 있었다. 로마의 11대 황제였던 도미티아누스 황제(재위 기간 AD 81-96)의 폭정으로 교회는 무너질 위기 앞에 놓여 있었다. 그는 충성과 절대적 복종을 끌어내기 위해 로마제국 전체에 황제를 ‘주님이며 신’(dominus et deus)으로 고백하도록 하면서 황제 신격화와 숭배(예배)를 요구한다. 이에 응할 수 없었던 그리스도인들은 거대한 핍박 앞에 놓이게 된다. 열두 사도 중에 11명은 이미 순교했고, 마지막 남은 사도인 요한마저 황제 숭배를 거부하다가 체포되어 정치, 종교 사범을 가두던 천혜의 감옥 밧모 섬에 유배된다. 황제의 특명이 아니면 풀려날 수 없는 곳이었다. 권력자의 핍박과 회유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왔지만 이제 그곳에서 생을 끝내야 할 시간에 서 있었다. 교회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요한계시록 1장 10절 말씀에 의하면 주의 영에 이끌려 혼자서 예배하는 모습을 대하게 된다. 함께 예배할 사람도 없었고, 그의 설교를 들어줄 교인도 한 명 없었지만 노 사도는 주의 영에 이끌려 예배하고 있다. 주의 영에 이끌리니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고, 들리지 않던 하늘의 말씀이 들려온다. 황제의 특명이 아니면 풀려날 수 없는 혹독한 유배지에 갇혀, 무너져 내리는 교회의 소식을 들으며 무릎 꿇은 그에게 하늘의 말씀이 들려온다. 주신 말씀을 전할 수가 없어 편지로 써 보내고 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1-5).
17. 교회가 무너질 상황에서 제시하신 해법이 무엇이었는가?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였다. 그것이 어려움 가운데 있는 교회를 지켜낼 비법이 될 수 있을까? 묵상하는 가운데 떠오른 시가 있었다. “눈을 다 감고도/ 갈 수 있느냐고/ 비탈길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말했다/ 두 발 없이도/ 아니, 길이 없어도/ 나 그대에게 갈 수 있다고”(김현태, “첫사랑”). ‘첫사랑’의 추억이 있는 분들은 시인의 마음과 그 말의 의미를 다 안다. 비탈길이어도 갈 수 있게 하는 힘, 눈을 감고도 넉넉히 가게 하는 힘, 길이 없어도 갈 수 있게 하는 힘, 아니 두 발이 없어도 그 험한 길을 헤치고 갈 수 있게 하는 힘... 그건 첫사랑의 힘이란다. 결국 모든 문제도 거기에서 기인하고, 그 해결도 거기에서 비롯된단다. 복음으로 가슴이 붉어진 사람, 복음의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사람을 세우는 것이 결국 신학교육의 최종 목표일 때 아포리아 시대에도 교회는 힘있게 세워진단다.
18. 루이스 글릭(Louise Gluck)의 시로 시작했으니 그의 시로 마무리 하자. 그의 시, “눈풀꽃”(snowdrops)은 두려움에 덮여 있는 세상에 대해 그렇게 노래를 전한다.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하리라//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에/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다른 꽃들 사이에서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기대가 되지 않는 무게가 나를 내리눌렀고, 두려움이 가득했단다. 하지만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기쁨에 모험을 걸면서 꿈틀거리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단다. 희망을 노래하기 어려운 시간이지만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하는 사람이 우뚝 서 있을 때 세워지는 역사는 계속된다는 시인의 외침이 고맙다. 그것이 생명 세계의 원리란다.
19. 오늘 영적 기상도는 어둡다. 한 시인의 외침처럼 “별의 바탕은 어둠”이다. “지금 어둠인 사람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고 외치는 시인이 고맙다. 그래서 시인은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은 분쟁과 탐욕, 미움과 갈등, 죄악으로 얼룩져 있고, 인간의 탐욕으로부터 시작된 역병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았으며, 생태계 파괴와 기후 위기는 가시화되면서 부메랑이 되어 인간 세상을 위협하고 있다. 계속 첨단 세상을 열어가고 있지만 인간 소외와 갈등은 깊어가고 탐욕의 늪은 더 깊어만 가고 있다. 문화적 장벽은 갈수록 높아가고 있고, 복음은 하찮은 것이 되어 버렸으며 교회 신뢰도는 계속해서 하향 곡선을 긋고 있다. 아포리아 시대에 인문학을 정립하고 거울로 삼았듯이 결국 다시 생명의 복음이다.
20. 이러한 세상을 향해 빛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에게 한 시인은 섬뜩한 시를 들려준다. “라면이 끓는 사이/ 냉장고에서 달걀 하나를 꺼낸다/ 무정란이다/ 껍데기에는 붉은 핏자국과 함께 생산 일자가 찍혀 있다/ 누군가 그를 낳은 것이다/ 비좁은 닭장에 갇혀, 애비도 없이/ 그가 누굴 닮았건, 그가 누구이건/ ...곧장 가격표가 붙고 유통된다/ ...그는 완전한 무엇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날아오르기를 꿈꾸지 않았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거나 누군가를 애끓게 사랑했던 기억도 없다/ 그런데 까보면 노른자도 있다/ 진짜 같다.” 무정란의 시대란다. 모양을 그럴듯하고 다 갖추었는데 거기 생명이 없다. 생명이 없는 ‘무정란’이 판을 치는 세상이지만 더 큰 문제는 ‘시답지 않은 시가 넘쳐 나는’ 것이라는 시인의 고발과 외침이 가슴 먹먹하게 한다. 생명의 세계를 보여주어야 할 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무정란의 시’가 넘쳐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란다.
21. ‘시’로 형상화 한 단어에 ‘예배, 설교, 교육, 선교, 봉사, 찬양 사역...’ 등의 단어를 넣으니 가슴에 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무정란의 교육, 무정란의 예배, 무정란의 설교, 무정란의 사역... 무정란과 유정란이 분간되지 않고, 생명 없는 것이 판을 치는 것이 우리 시대의 비극이란다.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 이름 드러내기에 분분한 시대, 거룩한 사역마저도 인간의 욕심의 도구로 변질 되어가는 시대, 거짓이 판을 치고, 거룩한 자리에 세속적 가치관이 들어와 판을 치는 시대... 세상이 어두운 것이 문제가 아니고 생명사역에는 생명이 요동쳐야 하고, 복음이 요동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문제란다.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교회는 무정란의 시대를 향해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세상에 생명을 전하는 일에 전부를 걸었다. 비록 묶여 있었으나 생명의 복음이 그들 속에 춤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막중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우리의 기도는 한가지이다. 끼리에 일레이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