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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순교자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 신앙의 증거를 남기다

김형석 기자 기자
작성일 2026-10-27 09:00

본문

도서 표지

카르타고의 원형 경기장에서 순교한 두 여성,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의 이야기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203년 로마 북아프리카의 중심 도시였던 카르타고에서 발생한 기독교인 박해 사건의 일부로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은 '성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의 수난기'라는 문헌을 통해 전해지며, 당시 체포된 여러 젊은 신자들의 명단이 언급된다. 여기에는 세투르누스, 세쿤둘루스, 노예였던 레보카투스와 펠리치타스, 그리고 귀족 출신 비비아 페르페투아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 중 페르페투아의 이야기가 특별히 주목받는 이유는 그녀의 영웅적인 신앙뿐만 아니라, 고대 세계에서 여성의 목소리로 기록된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다.

페르페투아의 이야기는 고대 여성의 삶과 관련된 염려, 즉 자녀 양육, 영아 수유, 여성의 정숙함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 독특한 여성적 서사를 보여준다. 당시 문맹률이 매우 높았음을 감안할 때, 페르페투아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구사했으며 교회 지도자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사실은 그녀가 매우 특권적인 배경을 가졌음을 시사한다.

당시 22세였던 페르페투아는 젖먹이 아들을 둔 어머니였다. 체포되어 가택 연금 상태에 놓였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딸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포기하라고 간청했지만, 페르페투아는 이를 거부하며 물 주전자를 가리키며 그것이 무엇이라 불리든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고난을 가장 힘들어했으며, 페르페투아는 아버지의 불행을 안타까워했다고 기록했다.

가택 연금 중 페르페투아는 세례를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를 포함한 젊은 기독교도들은 감옥에 갇혔다. 페르페투아는 감옥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아기에 대한 걱정을 꼽았다. 그녀는 두 명의 집사인 테르티우스와 포므포니우스의 도움으로 아기를 돌볼 수 있었다.

감옥에서 페르페투아는 주님께 환상을 구했고, 하늘로 뻗은 놋 사다리를 보았다. 사다리 주변에는 창, 갈고리, 단검, 화살 등이 있었고, 사다리 아래에는 거대한 용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녀는 사투루스라는 인물이 사다리를 오르는 것을 보았고, 사투루스는 페르페투아에게 용에게 물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했다. 페르페투아는 용의 머리를 밟고 올라갔으며, 용은 그녀를 두려워했다. 사다리를 더 오르자 넓은 정원과 양을 치는 백발의 노인이 나타났고, 그는 페르페투아에게 달콤한 유제품을 건네며 그녀를 환영했다. 페르페투아는 이 환상을 순교하여 천국에 들어갈 징조로 해석했다.

이후 아버지는 페르페투아를 찾아와 그녀의 가족, 특히 젖먹이 아들을 생각하며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생명을 구하라고 애원했다. 페르페투아는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했지만 흔들리지 않았고,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의 곁을 떠나며 깊은 슬픔에 잠겼다.

재판 당일, 페르페투아의 아버지는 아기를 데리고 와서 황제를 위한 희생 제사를 드릴 것을 간청하며 딸을 설득하려 했다. 총독 역시 황제의 안녕을 위해 제사를 드리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페르페투아와 다른 기독교도들은 단호하게 거부했고, 결국 총독은 그들에게 야생 동물과 싸우도록 선고했다.

페르페투아는 아기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아기가 더 이상 젖을 찾지 않고 자신도 젖몸살을 겪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배려하셨다고 기록하며, 이는 아들에 대한 걱정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하나님의 은혜로 해석했다. 또한, 그녀의 신앙적 모습에 감명받은 한 장교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면회를 허용했고, 페르페투아의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딸에게 마음을 돌릴 것을 호소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순교 전날, 페르페투아는 경기장에서 검투사와 싸우는 환상을 보았으며, 이내 자신이 남성 검투사가 되는 듯한 경험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의 이야기는 극한의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신앙의 증거로서,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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