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 공경인가, 파문인가? 제2차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과 정통 신학의 질문
김형석 기자 기자
작성일 2026-11-08 09:00
본문
기독교 역사에서 성상(聖像) 숭배가 사도들로부터 전수된 신앙의 일부인지, 아니면 후대에 발전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특히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는 성상 숭배를 권장하는 것을 넘어 이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파문(anathema)을 선고하며 이 문제가 교회의 중요한 신학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 모두 이 공의회를 공교회적(ecumenical) 결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존 샘슨(John Samson)이 저술한 도서 'Venerate the Icons or Face Anathema?'(출판사 미상, 출간일 2026년 10월 21일)는 이러한 성상 숭배의 기원과 성경 및 교회 역사가 밝히는 바를 탐구하며, 제2차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이 정통 신학에 던지는 질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단순히 벽에 기독교 미술 작품을 두는 것과, 그려진 형상 앞에 절하고 입맞춤하며 향과 불을 피우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한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기독교 미술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성상 숭배가 교회 내에서 널리 확립되기 훨씬 이전의 일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성상 숭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에게 파문을 선고한다면, 그리스도나 사도들이 그러한 행위를 명령하거나 이를 거부하는 이들을 정죄할 권한을 교회에 부여한 적이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제2차 니케아 공의회는 그리스도, 마리아, 천사, 성인들의 성상을 교회, 가정, 길가에 세우고 '합당한 인사와 존경스러운 공경'을 표할 것을 명했다. 또한 '고대의 경건한 관습에 따라' 향과 불을 바칠 수 있다고 결의했다. 결정적으로 공의회는 '우리는 존귀한 성상을 경례하노라. 이를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파문을 선고하노라. 거룩하고 존귀한 성상에 경례하지 않는 자들에게 파문이 있을지어다'라고 선언했다. 신약성경에서 파문은 '저주받은 자'(갈라디아서 1:8-9)를 의미하며, 사도 바울은 이를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것'(로마서 9:3)과 연결시킨다. 교회 역사에서 파문은 신자 공동체에서 한 사람을 배제하는 중대한 정죄를 의미하게 되었다. 비록 중세 서방의 파문 예식이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공의회의 자체적인 선언만으로도 그 엄중함이 드러난다.
공의회는 성상에 대한 공경이 하나님께만 속한 참된 예배(헬라어 'latreia')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으며, '성상에 대한 공경은 그것이 나타내는 대상에게로 옮겨간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의회는 그러한 공경을 요구했으며, 이를 거부하는 모든 기독교인에게 파문을 선고했다. 이러한 결정은 동방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역시 니케아 공의회를 근거로 성상 숭배를 변호하며, '기독교인의 성상 숭배는 우상을 금지하는 첫 번째 계명에 위배되지 않는다'(CCC 2131-2132)고 주장한다.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은 동일한 결정에 근거하고 있다.
초기 증거들은 다른 그림을 제시한다. 로빈 M. 젠슨(Robin M. Jensen)과 같은 초기 기독교 미술사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기독교 도상학이 3세기에 이르러서야 등장했다고 본다. 젠슨은 초기 기독교 예술이 주로 비우상적이고 교훈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으며, 숭배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이레니우스(Irenaeus)는 180년경 '이단론박'(Against Heresies)에서 카르포크라테스(Carpocrates)라는 영지주의 이단 집단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만들고 이를 이교 철학자들의 형상과 함께 장식하며 이교도와 같은 방식으로 공경했다고 기록했다. 이레니우스는 이러한 관행을 이단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또한 4세기 초 스페인에서 열린 엘비라(Elvira) 시노드는 '교회 안에 그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벽에 그려진 것이 숭배되고 경배되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라는 36조항을 통해 성상 설치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 성경적 증거들을 바탕으로 제2차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이 성경의 가르침과 초기 교회의 관행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성상 숭배를 거부할 경우 파문이라는 극단적인 조치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독교 미술과 예배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남기고 있다.
존 샘슨(John Samson)이 저술한 도서 'Venerate the Icons or Face Anathema?'(출판사 미상, 출간일 2026년 10월 21일)는 이러한 성상 숭배의 기원과 성경 및 교회 역사가 밝히는 바를 탐구하며, 제2차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이 정통 신학에 던지는 질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단순히 벽에 기독교 미술 작품을 두는 것과, 그려진 형상 앞에 절하고 입맞춤하며 향과 불을 피우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한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기독교 미술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성상 숭배가 교회 내에서 널리 확립되기 훨씬 이전의 일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성상 숭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에게 파문을 선고한다면, 그리스도나 사도들이 그러한 행위를 명령하거나 이를 거부하는 이들을 정죄할 권한을 교회에 부여한 적이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제2차 니케아 공의회는 그리스도, 마리아, 천사, 성인들의 성상을 교회, 가정, 길가에 세우고 '합당한 인사와 존경스러운 공경'을 표할 것을 명했다. 또한 '고대의 경건한 관습에 따라' 향과 불을 바칠 수 있다고 결의했다. 결정적으로 공의회는 '우리는 존귀한 성상을 경례하노라. 이를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파문을 선고하노라. 거룩하고 존귀한 성상에 경례하지 않는 자들에게 파문이 있을지어다'라고 선언했다. 신약성경에서 파문은 '저주받은 자'(갈라디아서 1:8-9)를 의미하며, 사도 바울은 이를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것'(로마서 9:3)과 연결시킨다. 교회 역사에서 파문은 신자 공동체에서 한 사람을 배제하는 중대한 정죄를 의미하게 되었다. 비록 중세 서방의 파문 예식이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공의회의 자체적인 선언만으로도 그 엄중함이 드러난다.
공의회는 성상에 대한 공경이 하나님께만 속한 참된 예배(헬라어 'latreia')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으며, '성상에 대한 공경은 그것이 나타내는 대상에게로 옮겨간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의회는 그러한 공경을 요구했으며, 이를 거부하는 모든 기독교인에게 파문을 선고했다. 이러한 결정은 동방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역시 니케아 공의회를 근거로 성상 숭배를 변호하며, '기독교인의 성상 숭배는 우상을 금지하는 첫 번째 계명에 위배되지 않는다'(CCC 2131-2132)고 주장한다.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은 동일한 결정에 근거하고 있다.
초기 증거들은 다른 그림을 제시한다. 로빈 M. 젠슨(Robin M. Jensen)과 같은 초기 기독교 미술사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기독교 도상학이 3세기에 이르러서야 등장했다고 본다. 젠슨은 초기 기독교 예술이 주로 비우상적이고 교훈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으며, 숭배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이레니우스(Irenaeus)는 180년경 '이단론박'(Against Heresies)에서 카르포크라테스(Carpocrates)라는 영지주의 이단 집단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만들고 이를 이교 철학자들의 형상과 함께 장식하며 이교도와 같은 방식으로 공경했다고 기록했다. 이레니우스는 이러한 관행을 이단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또한 4세기 초 스페인에서 열린 엘비라(Elvira) 시노드는 '교회 안에 그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벽에 그려진 것이 숭배되고 경배되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라는 36조항을 통해 성상 설치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 성경적 증거들을 바탕으로 제2차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이 성경의 가르침과 초기 교회의 관행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성상 숭배를 거부할 경우 파문이라는 극단적인 조치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독교 미술과 예배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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