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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격랑 속, 교회의 불변하는 좌표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10-22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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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 한 국가의 수장이 공공연히 '정상 가족'이라는 개념의 해체를 논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정책을 공론화하는가 하면, 대륙의 다른 편에서는 민족주의와 전쟁의 광풍이 휩쓸며 깊은 상흔을 남기고 있다. 이처럼 가치관의 지각변동과 문명의 충돌이 야기하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오늘날 한국 교회는 어디에 닻을 내리고 어떤 항로를 따라 나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역사를 통해 교회가 세상의 권력과 지식을 오용했을 때 어떤 비극을 낳았는지 똑똑히 기억한다. 1504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자메이카 원주민들의 환심을 잃고 식량 공급이 끊길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천문 지식을 이용해 월식 현상을 '신의 분노'로 포장하여 그들을 기만하고 굴복시켰다. 이는 진리를 섬겨야 할 자가 도리어 진리의 그림자를 이용해 자신의 탐욕을 채운, 권위 남용의 전형적인 사례다. 오늘날 교회 역시 세상의 지식, 부, 정치적 영향력을 복음의 통로가 아닌, 교회의 세를 과시하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콜럼버스의 월식'으로 악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세상의 방법으로 세상과 싸우려는 유혹은 교회의 영적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가장 빠른 길이다.

교회의 참된 힘은 세상을 속이는 지식이나 억압하는 권력에 있지 않다. 그것은 불의한 세상 한복판에서 진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순교적 영성에 있다. 42년 전, 폴란드의 공산 정권에 맞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을 외치다 차가운 비스와 강에 수장된 예지 포피에우슈코 신부의 삶이 이를 증명한다. 그는 총칼이 아니라 오직 말씀과 기도로 저항했으며, 그의 죽음은 폴란드 국민들의 양심을 일깨워 거대한 자유의 물결을 일으켰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이다. 유럽의 신학자들이 분쟁과 민족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학적 성찰을 모색하고, 복음주의자들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붙들고 증오를 넘어서려 몸부림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교회는 세상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따를 수 없는 사랑과 희생의 길을 제시함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킨다.

지금 한국 사회는 '새로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창조 질서를 허물려는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이 격랑 앞에서 한국 교회가 들어야 할 깃발은 정치적 투쟁의 깃발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진리의 깃발이며, 사랑의 깃발이다. 포피에우슈코 신부처럼 불의에 단호히 맞서되, 그리스도처럼 원수마저 품는 사랑을 잃지 않아야 한다. 콜럼버스의 길을 버리고 십자가의 길을 택할 때, 교회는 비로소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등대로서 그 사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명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에베소서 6:13). 지금이 바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진리 위에 굳건히 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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