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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긍정’의 신앙, 무엇을 향한 믿음인가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11-0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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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규모 집회에서 다시 한번 강조된 ‘절대긍정, 절대믿음’이라는 구호는 현대인의 불안한 마음에 강력한 위로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매력적인 구호가 담고 있는 신학적 함의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 믿음의 본질은 믿는 행위 자체의 강도나 긍정적인 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 누구이며 무엇을 믿느냐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막연한 낙관주의나 인간의 의지력으로 현실을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신실하신 하나님과 그의 약속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다. 우리의 믿음이 가치 있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이 ‘절대적’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믿는 대상이신 하나님이 ‘절대적’이시기 때문이다. 만약 믿음의 초점이 하나님에게서 ‘믿음’이라는 인간의 행위로 옮겨가게 되면, 신앙은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을 동원하는 주술적 행위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조시마 장로는 이러한 신앙의 깊이를 잘 보여준다. 그의 믿음은 고난이 없고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절대긍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인간의 죄와 고통의 심연을 직시하고, 그 모든 것을 끌어안는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신비를 발견한다. 십자가는 ‘절대긍정’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설적인 지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심으로써,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믿음이 아닌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는 참된 믿음의 본을 보이셨다.

따라서 한국 교회가 추구해야 할 믿음은 현실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절대긍정’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주권을 신뢰하는 ‘절대신뢰’여야 한다. 시편의 기자들처럼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고통과 의심을 토로하면서도, 결국 그분의 구원을 바라보는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믿음의 영웅들이 걸어간 길은 형통의 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붙잡았던 순례의 길이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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