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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V칼럼] 상처가 증오가 되기 전에

김의선 목사 기자
작성일 2026-10-22 07:10

본문

살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때로는 의도적인 악행에 마음이 베이고 그 상처는 오래도록 쓰라린 흉터로 남기도 합니다. 최근 유럽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 소식을 접했습니다. 전쟁과 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아르메니아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발표자는 그들의 깊은 고통이 이미 '증오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뼈에 사무친 고통이 어떻게 영혼을 잠식하는 독(毒)이 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상처를 제때 돌보지 않으면 반드시 덧나기 마련입니다.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치된 상처는 분노와 원망을 낳고, 이내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한 깊은 증오로 자라납니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의 에이해브 선장을 떠올려 봅니다. 그는 거대한 흰 고래 모비 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후, 자신의 모든 삶을 복수심에 불태웁니다. 그의 상처는 거대한 증오가 되어,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배에 탄 모든 선원과 배 자체를 파멸의 심연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증오의 파괴적인 본질입니다. 증오는 상대를 겨누는 칼 같지만, 실은 그 칼을 든 자신의 손에서부터 피가 흐르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 증오의 사슬을 끊어낼 방법은 무엇일까요? 컨퍼런스에서 제시된 해법은 너무나 뜻밖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억울함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는 우리에게,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은 얼마나 아득하게 들리는지요.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나를 파멸로 이끄는 증오의 감옥에서 걸어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4). 이는 상처를 준 사람의 죄를 없던 일로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최종적인 심판은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더 이상 내 영혼이 미움의 노예로 살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도 오랫동안 아물지 않은 채, 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상처가 있습니까? 그 상처가 에이해브 선장의 증오처럼 당신의 삶을 집어삼키기 전에, 십자가 앞에 조용히 내려놓기를 권합니다. 인류의 모든 죄와 상처를 온몸으로 받으시고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의 찢기신 상처 안에서 우리의 모든 상처는 비로소 참된 치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우리를 옭아매는 율법이 아니라, 우리를 증오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은혜의 초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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