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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V칼럼 | 정중미중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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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22-12-1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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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춘배목사 정남중앙교회 

우리교회 자랑중에 하나가 정중미중창단입니다.
코로나로 예배인원 19명으로 제한하는등 어려움이 있을 때 매달 성도님들의 신청곡을 받아 직접 부른 찬송을 유튜브에 올려주었습니다. 발표하는 매회마다 천명의 성도들이 있는 장소에서 이 찬양을 들으며 영적 힘을 공급받아왔습니다. 이제 예배규제가 해제되고 현장예배가 회복되자 지난달에 20회의 찬양을 끝으로 활동을 멈춘다고 했습니다. 그 멘트에 코끝이 찡해졌고 수고한 대원들에게 고맙고 그런 일꾼들을 세워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매회 조회수가 천번에 이르고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힘들지만 격월 아니면 분기별이라도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찬송엔 능력이 있습니다.
영국 뉴 잉글랜드 어느 농가에 살고 있던 한 여인이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늘 찬송가를 불러주었습니다. 앉으나 서나 젖을 줄 때나 찬송을 불렀습니다.
“새 예루살렘 복된 집, 네 이름 높도다. 이 수고 언제 그치고 나 거기 가리까 나 거기 가리까”
아이는 울다가도 이 찬송을 듣기만 하면 편안함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병에 들어 찬송소리가 점점 약하여지더니 드디어 그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이의 행복도 그친 것 같았습니다.
얼마 후 새 엄마가 생겼습니다. 구박이 너무 심하자 아이는 어머니가 보던 성경책을 품에 안고 도시로 가출하였습니다. 혼자 살면서 결국 타락된 방탕생활을 하다가 결국 병이 들어 하숙집에 누워 죽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옆 교회의 한 전도사가 그 이야기를 듣고 하숙집을 방문하여 그 청년에게 간곡하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전도사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 청년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러나 막무가내였습니다. 전도사님은 지칠대로 지쳐 포기하며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서 혼자 흥얼거리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새 예루살렘 복된 집, 네 이름 높도다. 이 수고 언제 그치고 나 거기 가리까 나 거기 가리까” 이 찬송을 듣는 순간 청년은 갑자기 몸부림치며 탄식하였습니다.
‘아! 어머니의 찬송!’ 청년은 어머니가 읽으시던 성경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몸부림치며 울었습니다. “어머니의 찬송소리” 그러면서 그동안의 방탕한 생활을 회개하였습니다. 인생의 문이 다시 열리고 죄악의 쇠사슬이 끊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청년의 얼굴에서는 평생 느끼지 못한 감동과 기쁨의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인생으로 태어나게 한 것은 찬송이었습니다. 이렇게 찬송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그리고 낙심된 자에게 용기를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찬송할 수 있고 들을 수 있음은 분명 큰 축복이요 기쁨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송하는 자에게는 사탄이 근심의 씨를 뿌릴 수 없다”는 노르웨이의 속담이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민화에 사탄이 창고를 지었는데 여기에는 미움, 비난, 시기, 다툼의 씨들이 저장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놀란 것은 한 동네만은 어떤 씨를 뿌려도 효력이 없었습니다. 이 동네는 감사의 찬송을 성도들이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정중미중창단,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신 달란트를 중단치 말고 선용하시길 부탁합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찬양을 기다리고 계시고 성도들은 위로와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의 찬송함을 기뻐하십니다. 매일이 찬송하는 삶으로 마귀가 역사하지 못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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