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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선교는 멈출 수 없었다”…캄보디아 김성만 선교사의 사명

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 2026-05-1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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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한국에서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선교지를 두고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캄보디아에서 고아들과 함께 생활하며 사역 중인 김성만 선교사가 각막 이식 수술 이후에도 다시 선교 현장으로 돌아갔다. 수술을 받은 눈은 아직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다. 여기에 동물 독으로 인해 얼굴 피부 일부가 괴사되는 증상까지 겹치며 건강은 크게 악화된 상황이다.

그러나 김 선교사는 지금도 캄보디아 바울센터 공사와 고아원 사역, 어린이 방과 후 학교, EPS 한국어학교 운영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 아이들과 현지 사역자들이 안전하게 지내고 사역이 멈추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김성만 선교사가 눈 부상을 입은 것은 20261월 초였다. 그는 캄보디아 현지에서 바울센터 공사와 제초 작업을 직접 하던 중 흙이 눈에 들어가는 사고를 당했다. 이후 원인을 알 수 없는 후유증이 이어졌고 약 2주간 현지 병원에 입원했다. 상태가 나아지지 않자 지난 34일 한국으로 입국해 같은 달 16일 각막 이식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나이와 면역력 저하로 인해 회복 속도는 더뎠고, 의료진은 장기간 치료를 권고했다. 그럼에도 그는 얼마 전 다시 캄보디아 선교지를 찾았다. 고아들과 교회, 공사 현장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김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 캄보디아 바울교회는 우기철마다 침수 피해를 겪고 있다. 원래 교회 주변은 논밭이었고 교회 부지가 가장 높은 지대였다. 그러나 2019년 이후 지역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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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약 25분 거리에는 캄보디아 국제공항 건설이 추진됐고 메콩강 부두와 공항을 연결하는 대규모 도로가 조성됐다. 주변에는 공단과 신도시 개발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도로가 높아지면서 바울교회 부지는 오히려 약 2m 낮은 지형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우기만 되면 교회 전체가 물에 잠겨 정상적인 예배조차 드리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캄보디아가 온라인 사기 범죄의 중심지로 부각되며 한국교회의 관심도 크게 줄어들었다. 최근 태국과의 군사적 긴장까지 더해지며 선교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김 선교사는 사역을 멈추지 않았다. 경주중부교회의 후원으로 그는 2024년부터 기존 바울교회에서 약 4km 떨어진 곳에 고아원과 새로운 교회 건축을 시작했다. 현재는 고아 어린이 21명과 함께 생활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고, 바울센터 건축도 계속 진행 중이다.

사실 김성만 선교사의 삶은 처음부터 선교사의 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한때 록 음악을 사랑하던 청년이었다. 가수 김종서와 함께 음악 작업을 하며 드럼을 치고 작곡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삶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공사판에서 잡부 일을 하며 살아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로 손가락을 잃게 됐다. 그는 그 사건을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됐고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순종하기로 결단했다.

20041229일 밤, 김성만 선교사는 한국의 모든 재산을 정리한 뒤 가족과 함께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떠났다. 당시 그는 목사가 아닌 평신도 집사였다. 아내 이영희 씨와 자녀 겨울·현민과 함께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땅에서 선교를 시작했다.

그는 2005년 프놈펜의 한 임대주택 마당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이후 공동체가 성장하면서 2007년 현재의 바울교회 부지를 매입했고, 2008년 교회 건축에 들어가 2013년 헌당예배를 드렸다.

또한 캄보디아 청년들을 세우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며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고향 선배이자 예장개혁총연(현 기독총회) 총회장을 지낸 이은재 목사의 도움으로 신학 과정을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교회는 단순히 예배만 드리는 공간이 아니었다. 성도들의 자립을 위한 사역도 함께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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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교사는 성도들의 생계를 돕기 위해 뚝뚝이’ 7대를 지원받아 운영하기 시작했고, 이후 차량은 15대 규모까지 늘어났다. 주일에는 성도들을 교회로 실어 나르고 평일에는 생계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교회 중심의 자립 공동체가 형성됐다.

또 교회 앞 학교 건물 건축을 위해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던 중 이명숙 회장의 후원을 받아 학교 건물을 세울 수 있었다. 그는 건축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접 공사 현장에서 일하며 학교를 완성했다.

현재 김성만 선교사는 눈의 회복 피부 괴사 치료 고아들과 현지 사역자들의 안전 치료비와 공사로 인한 재정 회복 현지 일자리 사역 지속 어린이 방과 후 학교 운영 EPS 한국어학교 사역 유지를 위해 한국교회의 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손가락을 잃고, 이제는 시력까지 위협받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캄보디아 땅에서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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