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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개혁주의를 경계하며 정통 신학의 근간을 재확인하다

김형석 기자 기자
작성일 2026-07-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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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혁주의(Reformed) 또는 칼뱅주의(Calvinistic)라는 명칭을 자처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정통 신학의 근간을 흔드는 ‘어설픈’ 개혁주의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성경의 절대적 권위와 충족성을 부정하는 경향은 개혁주의의 핵심을 벗어난 것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논의는 월터 J. 챈트리(Walter J. Chantry)의 글 ‘Sort of’ Reformed: Part 1’(2017년 11월 27일 게재)에서 제기되었다. 챈트리 씨는 20세기 중반, 복잡한 신학적 논쟁을 피해 ‘교리’ 자체를 경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개혁주의’ 또는 ‘칼뱅주의’라는 명칭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던 시기를 회고한다. 당시 ‘정통’이라는 단어는 ‘냉담함’의 동의어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20세기 후반부터 성경적, 즉 개혁주의 교리를 담대하게 재확립하려는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등장했다. 종교개혁가들과 청교도들의 저작을 재출판하는 출판사들의 노력도 이러한 흐름에 큰 도움을 주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개혁주의 신학을 따르는 이들의 수는 꾸준히 증가했으며, 그 영향력은 예상치 못한 곳까지 미치고 있다. 개혁주의 주석과 서적들이 널리 읽히고, 개혁주의 설교와 증거 사역이 확산되면서 ‘개혁주의’, ‘칼뱅주의’, ‘주권적 은혜’ 등의 명칭을 사용하고자 하는 개인과 단체가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챈트리 씨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도 인정한다. 인간의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성령의 각성하심을 깨닫고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진리를 발견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입문자들이 자신을 ‘개혁주의’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자신들 역시 진리를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기에, 초심자들의 여정에 대해 인내심을 가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는 일부 사람들이 개혁주의 신학을 ‘샐러드 바’처럼 접근하는 세태를 비판한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교리만 취하고, 입맛에 맞지 않는 교리에는 거부감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들은 종교개혁의 근본 교리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며, 심지어 개혁주의 신앙고백의 기둥을 이루는 핵심 진리들을 결정적으로 거부하면서도 스스로를 ‘개혁주의’라고 칭한다는 지적이다. 더 나아가 일부에서는 이러한 인물들을 ‘모범적인 개혁주의 교사’로 내세우거나, 기본적인 진리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까지 포용하는 단체를 조직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챈트리 씨는 개혁주의 신학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성경의 권위’라고 강조한다.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은 “성경은 모든 구원에 이르는 지식, 믿음, 순종에 대한 유일하고 충분하며 확실하고 무오한 규칙”이라고 선언한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그의 백성에게 나타내시는 이전의 방식들은 이제 중단되었다”고 명시하며, “하나님의 온전한 뜻, 그의 영광, 사람의 구원, 믿음과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은 성경에 명백히 명시되어 있거나 반드시 포함되어 있으며, 여기에 새로운 영의 계시나 사람의 전통에 의해 어떤 것도 더해지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따라서 챈트리 씨는 성경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권위를 의식적으로 주장하지 않는 이들은 비록 성경적 진리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개혁주의’라고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20세기 후반 개혁주의 신학이 부흥하는 반면, 교회의 약함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이상을 갈망하고 현대의 기적을 행하는 자들과 새로운 계시를 추구하는 반대 운동이 기독교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경향은 성경의 권위에 대한 견해에 있어 개혁주의 가르침과 충돌하며, 심지어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에서 말한 것처럼 성경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갖추게” 한다는 주장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중세 교회 역시 성경을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믿었으나, 교황과 감독들의 해석이나 ‘계시’를 성경과 혼합하여 가르쳤던 것처럼, 현대의 일부 움직임도 유사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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