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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에서 피어난 신비주의, 십자가의 성 요한의 영성 재조명

김형석 기자 기자
작성일 2026-08-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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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신비가이자 가르멜 수도회 사제였던 십자가의 성 요한(St. John of the Cross, 1542-1591)의 삶과 사상이 현대 사회에 던지는 영적 메시지가 주목받고 있다.

1542년 스페인에서 태어난 십자가의 성 요한은 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깊은 사랑을 실천하며 신비주의 영성의 깊이를 더했다. 그의 부친은 귀족 가문에서 쫓겨나면서까지 길쌈꾼의 딸과 결혼했으며, 부친 사후 모친은 궁핍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 이러한 가정 환경 속에서 어린 요한은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닌 하느님 안에서 아름다움과 행복을 찾아야 함을 배웠다. 14세에는 스페인 최대 도시에서 불치병과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자원하며 극심한 빈곤과 고통을 경험했다.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한 후, 그는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St. Teresa of Avila)와 함께 수도회 개혁 운동에 동참했다. 성녀 테레사는 수도회가 본래의 기도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고,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러한 개혁의 뜻을 지지했다. 그러나 수도회 내 많은 이들은 이러한 개혁에 위협을 느꼈고, 급기야 요한은 수도회 동료들에 의해 납치되어 6피트(약 1.8미터) 곱하기 10피트(약 3미터) 크기의 감옥에 갇히는 시련을 겪었다. 그는 일주일에 세 번씩 매질을 당했으며, 창살 없는 작은 창문만이 유일한 빛줄기였다.

이러한 극한의 어둠과 절망 속에서도 그의 신앙과 사랑은 꺼지지 않는 불꽃과 같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오직 하느님만을 의지했으며, 그 감옥 안에서 하느님은 그에게 가장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9개월 후, 그는 잠금장치를 풀고 경비병을 피해 탈출에 성공했다. 감옥에서 썼던 신비주의 시들을 가지고 담요 조각으로 만든 밧줄을 이용해 창문으로 빠져나왔다. 목적지 없이 떠돌던 그는 한 마리의 개를 따라 문명 세계로 향했고, 수녀원 병동에 숨어 자신이 쓴 시를 수녀들에게 낭독하며 자신의 신비 체험을 나누는 데 삶을 헌신했다.

그의 삶은 빈곤과 박해로 인해 비관주의에 빠질 수도 있었으나, 오히려 그는 자비로운 신비가로 거듭났다. 그는 "누가 혹독함으로 사람들이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설득하는 것을 보았는가?"라거나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을 두라. 그러면 사랑을 발견할 것이다"라는 믿음을 실천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영혼의 어두운 밤』(Dark Night of the Soul), 『카르멜 산의 상승』(Ascent of Mount Carmel), 『영혼의 노래』(Spiritual Canticle of the Soul and the Bridegroom Christ) 등 영적 성숙과 기도에 관한 실질적인 조언을 담은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그의 저서들은 출간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깊은 영적 통찰을 제공하며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정통 신학계에서는 그의 저서들이 인간의 고통과 시련 속에서 하느님과의 연합을 추구하는 신비주의적 여정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다만, 일부에서는 그의 신비 체험이 성경적 계시의 보편성을 넘어서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에 치우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성 요한이 제시하는 하느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과 자기 비움의 영성은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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