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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케돈 신조가 말하는 예수님의 2성 1인격

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 2026-03-18 21:10

본문

글/ 고형섭 교수(안양대학교 신학대학 조직신학)

들어가는 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론은 기독교 교리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교리 중 하나이다. 2015년 5월 18일 기독교연합회관에서 박형택은 이른바 “메시아 과정설”을 주장하였고, 여러 교단의 신학자들에 의해 그 이단성이 이미 판단·지적된 바 있다. 교회사 속에서 수많은 이단들이 기독론 영역에서 등장해 왔음에도, 오늘날 예수님의 인격론은 종종 “옛날 교리”, “논쟁이 끝난 문제” 정도로 취급되며 실천적으로는 주변화되고 있다.

박형택의 시도는 이러한 현대 교회의 상황, 곧 목회 현장에서 예수님의 인격론이 약화·왜곡되기 쉬운 지점을 파고들어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인격론을 잘못 설명하면 곧바로 오류와 공격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많은 목회자들이 설교에서 이 주제를 깊이 다루기를 주저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격론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의 계시 자체를 의심하거나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실제로 고대 교회 시대부터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으며, 그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변화설, 세력설, 양태설 등 다양한 양상이 나타났다.

박형택의 “메시아 과정설”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기 전, 곧 창세 전에실재하신 성자 하나님이 아니라, 사단의 시험을 포함한 특정 절차와 과정을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메시아가 되어 간” 존재로 이해된다. 이는 이미 4세기에 이단으로 정죄된 아리우스가 주장한 바, 예수는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났다가 어느 시점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점진적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본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구조를 가진다. 박형택은 예수님이 사단과 실질적으로 싸우실 수 없으며, 사단의 시험은 그분이 메시아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수순에 불과하고,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충분히 검증되어 이단성이 있다고 평가되었다. 곧, 예수님이 원래는 단지 인간으로 태어났다가 어떤 과정을 통하여 강력한 인격적 감화를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 변모했다는 식의 이해, 혹은 신성의 힘이 인성 위에 독재적으로 군림하며 예수를 “신격화된 인간” 정도로 파악하는 이론은, 자유주의 신학이나 종교혼합적 사상에서 자주 발견되는 내용일 뿐, 정통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도저히 수용될 수 없다.

본 논문은 예수님의 2성 1인격 교리에 대한 성경적·역사적 고백을 다시 한 번 확인함으로써, 박형택의 “메시아 과정설”이 역사적 정통 신앙과 어떻게 어긋나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사도신조, 니케아 신조,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칼케돈신조, 아타나시우스 신조와 더불어 개혁파의 표준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2성 1인격 이해를 검토할 것이다.

1) 예수님의 인격론이란 무엇인가?

초대 교회의 교리문답과 신조적 신앙고백들은 대체로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혹은 “창조주이신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을 함께 언급하는 방식으로 삼위일체 신앙과 기독론을 동시에 고백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제2위격(제2인격)으로서 “아들”이라 불리시는 분이다. 아들의 독자성은, 그가 아버지로부터 나신 하나님이시며, “독생하신 아들”로서의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와 함께 성령을 내어 보내시는 분이라는 사실 안에 드러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8장 2항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위격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참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하나님으로서 아버지와 한 본체이시며 또한 동일하시다. 그는 전적으로 온전한 신성과 전적으로 온전한 인성을 가지셨는데, 이 두 성품은 하나의 인격 안에서 결합되어 있으며, 분리되지도 않고, 변경되지도 않고, 혼합되지도 않으며, 서로 혼동되지도 않는다. 이 인격은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사람이시며, 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요약하면, 예수님의 인격론은 한 인격 안에 두 본성(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이 존재하되, 서로 혼합되거나 분리되지 않고, 한 위격 안에서 연합되어 계신다는 교리를 말한다. 이 2성 1인격의 이해는 삼위일체 교리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교회사 속에서 여러 이단 논쟁을 거쳐 정교하게 다듬어진 신앙의 핵심이다.

2) 역사적 근거

(1) 사도신조

사도신조는 신약성경 정경이 교회 안에서 자리 잡아 가는 과정 속에서, 신앙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 고백으로 형성되었으며, 교회가 공적으로 사용하는 신앙고백서로 수용되었다. 예수님 승천 이후 약 300년 동안 로마 제국의 박해가 지속되자, 복잡한 성경의 모든 내용을 설교와 교리 교육만으로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이에 따라 요약된 신앙고백이 필요하게 되었다. 사도신조라는 이름은 사도들이 직접 저술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도들의 신앙을 그대로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사도신조는 모세와 선지자들, 그리고 사도들의 신앙 고백 위에 서 있으며, 교회사적 정통 신앙을 지속적으로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어떤 경우든 사도신조를 왜곡하거나 그 근본 취지를 부인한다면, 이는 교회가 이단으로 취급해야 할 심각한 문제이다.

사도신조의 핵심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결코 분리하지 않고 동일 선상에서 고백한다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다른 관점에서 분리하여 해석하고 가르치는 것은 명백한 이단적 사상이다.

(2) 니케아 신조

A.D. 325년 콘스탄틴 황제는 교회의 교리를 통일하기 위하여 니케아에서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당시 교회는 동·서로 분열될 위험에 직면해 있었으며, 특히 아리우스가 “그리스도의 신성이 성부의 신성과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교회를 큰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다. 이에 대해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영원한 아들이며, 아버지와 동일 본질(동질, homoousios)이시다”라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니케아 신조는 이러한 논쟁 속에서 정립된 기독론적 신앙고백으로, 교회사 전반에 걸쳐 정통 교리의 기준으로 인정되어 왔다.

니케아 신조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천지와 만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창조주로 고백할 뿐 아니라, “유일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모든 세계 이전에 아버지께로부터 나신 참 하나님으로, 성부와 동일 본질을 가지신 분으로 고백한다. 그는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셔서 사람이 되셨으며,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성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주님으로 고백된다. 이 고백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참된 신성과 참된 인성, 그리고 그분의 구속 사역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3)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

A.D. 381년 데오도시우스 황제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제2차 세계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이 회의는 니케아 공의회 이후 계속된 기독론 논쟁을 정리하고, 특히 성령의 신성과 동질성을 명확히 하는 한편, 니케아 신조를 일부 보완·확정하기 위한 회의였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한 분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천지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로 고백한다. 또한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만물보다 먼저 아버지께로부터 나신 분으로, “신 중의 신, 빛 중의 빛, 참 하나님 중의 참 하나님”으로, “지음을 받지 아니하시고 나셨으며, 성부와 한 본질(동일 본체)”을 가지신 분으로 고백한다.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지음을 받았으며, 우리 인류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사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셔서 사람이 되셨고, 본디오 빌라도 아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성부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영광 가운데 다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고, 그의 나라는 무궁하다고 고백한다. 또한 성령을 “주 되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시며, 성부와 성자와 함께 동일한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는 분으로 고백함으로써,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2성 1인격 이해를 더욱 공고히 한다.

(4) 칼케돈 신조

A.D. 451년 데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칼케돈에서 제4차 세계 공의회가 소집되었다. 이 공의회는 유티케스주의, 네스토리우스주의, 아폴리나리우스주의, 아리우스주의 등 기독론과 관련된 여러 이단들을 규탄하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정통교리를 확정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이 회의에는 약 520명에서 630명에 이르는 주교와 감독들이 참석하였는데, 교황 레오 1세의 사절 두 사람과 아프리카에서 망명해 온 두 감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동방교회의 감독들이었다. 니케아 이후에도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었다. 특히 “신성과 인성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우세한가”라는 문제,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두 본성이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였다. 칼케돈 공의회는 이러한 논쟁을 종결하고, 그리스도의 2성 1인격에 대한 교리를 분명히 확정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소집되었다.

칼케돈 신조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교부들의 가르침을 따라 모든 신자가 한 분이신 독생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도록 가르치는데, 그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으로서 완전하시다. 그는 참 하나님이시며, 합리적인 영혼과 몸을 가진 참 사람이시다. 신성에 관하여는 성부와 동일 본질이시고, 인성에 관하여는 죄를 제외하고 모든 점에서 우리와 동일하시다. 신성에 관하여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성부에게서 독생하셨고, 인성에 관하여는 마지막 날들에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동정녀 마리아, 곧 하나님의 어머니에게서 나셨다. 우리는 한 분이신 그리스도, 성자, 독생자를 고백하되, 그 안에 두 본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이 두 본성은 서로 혼동되지 않고, 서로 변하지 않으며, 서로 분리되지 않고, 서로 분열되지 않는다. 각 본성의 고유한 특성은 연합으로 말미암아 소멸되지 않고, 오히려 보존되며, 두 본성은 한 위격과 한 인격 안에서 일치를 이룬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의 두 본성은 결코 두 인격으로 나뉘지 않고, 오직 하나의 위격과 인격을 이루시는 분, 곧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룬다.

(5)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신조

아타나시우스(295?–372)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그곳의 교리 학교에서 신학교육을 받았으며, 감독 알렉산더 아래에서 집사로 섬기다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하여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과 인성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였다. 그는 여러 차례 추방과 복귀를 반복하면서도 성경에 따른 그리스도의 양성 교리를 끝까지 지켰고,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아리우스파가 최종적으로 패배하고 정통 신학이 확립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른바 “아타나시우스 신조”는 사도신조, 니케아 신조와 더불어 고대 교회의 세 주요 신조로 불린다. 실제 저작자가 아타나시우스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학문적 논쟁이 있으나, 서방 교회는 상당히 일찍부터 이 신조를 그의 이름과 연관지어 불러 왔다. 그 기원과 출처는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그 내용이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2성 1인격 교리를 가장 정교하게 요약한 고백이라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다.

아타나시우스 신조는 먼저 삼위일체 신앙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누구든지 구원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이 신앙을 가져야 하며, 이 신앙을 온전하고 순결하게 지키지 않으면 틀림없이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된다고 선언한다. 이 신앙이란 “삼위가 일체이시고, 일체가 삼위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인데, 성부·성자·성령은 인격에 있어서 서로 구별되지만, 신격과 영광과 위엄에 있어서 동등하시며, 세 하나님이나 세 주님이 아니라 한 하나님, 한 주님이심을 고백한다. 이 신조의 후반부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 집중적으로 증언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참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참 인간이시다. 그는 성부의 본질에서 나신 하나님이시며, 세상 이전에 나신 분이시고, 동시에 인성에 관하여는 그의 어머니의 본질에서 이 세상에 나신 분이시다. 그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으로서, 이성 있는 영혼과 인간의 육신을 가지신다. 신성에 관하여는 성부와 동등하시되, 인성에 관하여는 성부보다 낮으시다. 그러나 이 두 본성이 있다고 해서 두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분 그리스도이시다. 그의 하나 됨은 신성이 육신으로 변질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성을 취하심으로써 한 인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연합되었다는 뜻이다. 한 사람 안에서 영혼과 육신이 하나의 인격을 이루듯이, 한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을 이룬다. 이분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성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분이시다. 그때 모든 사람이 육체로 부활하여 각각 행한 바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며, 선을 행한 자는 영생으로, 악을 행한 자는 영원한 심판에 이르게 될 것이다. 신조는

마지막으로 “이 신앙을 신실하게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결론짓는다. 이처럼 고대 신조들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의 2성 1인격과 삼위일체 교리를 치밀하게 정리한 아타나시우스 신조 어디에도, 박형택이 말하는 “메시아 과정론”과 유사한 사상이 전혀 존재하지 않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은 태초 이전, 곧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신 성자 하나님이시며, 때가 차매 오셔서 죄 없으신 완전한 인간의 본성을 취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고백은 아래와 같다.

1. 누구든지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것 이전에 먼저 이 신앙을 소유해야 한다.

2. 누구든지 이 신앙을, 완전하고 순결하게 지키지 않으면, 틀림없이 영원한 멸망을 받을 것이다.

3. 이 신앙이란 다음 것들이다. 3위 자체가 1체 이시고, 1체 자체가 3위이신, 유일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4. 이 3위는 혼합된 것도 아니요, 그 본질을 나눈 것도 아니다.

5. 왜냐하면 아버지의 한 인격과 아들의 다른 인격, 또한 성령의 또 다른 인격이 계시기 때문이다.

6.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격은 모두가 다 하나요 그 영광도 동일하며 그 위엄도 함께 영원한 것이다.

7.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8. 성부께서 창조함 받지 않으신 것 같이, 성자도 창조함 받지 않으셨으며, 성령도 창조함 받지 않으셨다.

9. 성부께서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신 것 같이, 성자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고, 성령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다.

10. 성부께서 영원하신 것같이, 성자도 영원하시며, 성령도 영원하시다.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 영원한 분들이 아니시며, 한 영원한 분이시다.

12. 창조되지도 않으셨고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 세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창조되지도 않으시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단 한 하나님만이 계실 뿐이다.

13. 성부께서 전능하시듯이 성자와 성령도 전능하시다.

14. 그러나 세 하나님의 전능자가 계신 것이 아니요, 오직 한 하나님의 전능자가 계실 뿐이다.

15. 성부가 하나님이시듯이 성자도 성령도 하나님이시다.

16. 그럼에도 세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만이 계실 뿐이다.

17. 성부께서 주님이시듯이 성자도 성령도 주님이시다.

18. 그럼에도 주님이 세 주가 아니라 한 주이실 뿐이다.

19. 우리는 이 각각의 3위께서 그 스스로 하나님이시오,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기독교의 진리로 받는 바이다.

20. 따라서 세 하나님이 계시며 세 분 주님이 계시다는 말은 참 기독교인으로서 금한다.

21. 성부는 그 무엇에서 만들어지지 않으셨으니, 곧 창조함 받지도 않으시고, 나지도 않으셨다.

22. 성자는 성부에게서만 나시며, 지음을 받았거나, 창조되신 것이 아니다.

23.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보내지셨으나 지음을 받았거나 창조되었거나 발생된 분이 아니시고, 나오신 것이다.

24. 따라서 세 분 성부가 아닌 한 성부, 세 분 성자가 아닌 한 분 성자, 세 분 성령이 아닌 한 성령만이 계실 뿐이다.

25. 이 삼위에 있어서 그 어느 한 위가 다른 한 위에 앞서거나 뒤에 계신 것이 아니며, 어느 한 위가 다른 위보다 크거나 작을 수도 없다.

26. 오히려 삼위 모두 동일하게 영원하시고 동등하시다.

27. 따라서 앞서 말한 대로, 이 모든 것에서 삼위가 일체 이시며, 일체 삼위인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으셔야 할 것이다.

28. 그러므로 구원을 받으려는 이는, 삼위일체에 관하여 이와 같이 믿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9. 동시에, 영원한 구원을 얻는 데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하여 올바로 믿어야 한다.

30. 올바른 믿음이란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오 동시에 인간이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31. 그는 성부의 본질에서 나신 신이시며, 이 세상이 생기기 전에 나신 자요, 동시에 인간으로서는 그 어머니의 본질로부터 이 세상에서 나신 분이시다.

32. 완전한 하나님이시오 또한 완전한 인간으로서 이성 있는 영과, 인간의 육신으로서 생존하신다.

33. 신성으로서는 성부와 동등 되나 그의 인성으로서는 성부보다 낮으신 분이시다.

34. 비록 그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이 되시긴 하나 둘이 아니요, 한 분 그리스도이실 뿐이다.

35. 하나됨에 있어서는 그의 신성이 육신으로 전환된 것이 아니라 (육신화 함으로써가 아니며) 인간의 몸을 취한(그의 인성을 신성 안에 받음으로써) 하나님이 되시는 분이시다.

36. 온전히 하나인데, 그 본질이 혼합된 분이 아니라 품격의 통일성으로 하나 되신 분이시다.

37. 한 인간이 영혼과 육신을 가졌듯이, 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오 동시에 인간이 되신다.

38. 그분은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셨다.

39. 그는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곧 성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40. 거기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41. 그분이 오실 때에 모든 사람들은 육체로 부활할 것이며,

42. 자신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43. 그리고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영생으로 나가고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영원한 불에 들어갈 것이다.

44. 이것이 교회의 참 신앙이며, 이를 신실하게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아멘.

3) 역사적 이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이해는 교회사 2,000년 동안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종말론적 관점에서 볼 때, 말세에는 이러한 다양한 이단적 견해들이 다시금 집약되어 등장할 수 있기에, 오늘날을 사는 성도들은 역사적 논쟁들을 충분히 연구하고 분별력을 준비해야 한다.

(1) 에비온파

A.D. 2세기 초에 등장한 에비온파는 그 명칭이 “가난한 자들”이라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모세 율법과 구약의 종교의식을 버리지 못한 유대계 그리스도인들로, 할례와 안식일을 특별히 중시하며, 모세 율법 전체를 준수하려 하였다.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특별한 거처로 숭배하는 성향도 강했다. 에비온파는 예수를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보통 사람, 마지막 위대한 예언자 정도로만 이해하였고,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부정하였다.

(2) 그노시스파

A.D. 2세기경 초대 교회에 침투한 그노시스주의는 매우 위험한 이단 사상으로,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만이 비밀스러운 영적 지식(그노시스)을 소유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물질 세계를 회복 불가능한 악으로 규정하였고, 세계의 창조자이신 구약의 하나님을 궁극적 최고 존재가 아니라 “데미우르고스”라 불리는 하급 신격으로 격하시키려 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도, 그들은 예수의 인성이 단지 “겉모양”에 불과하거나, 십자가에서 실제로 죽은 분은 참된 신성이 아니라 단지 인간 예수라고 주장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과 구속 사역을 훼손하였다.- 35

(3) 아리안파

A.D. 320년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장로 아리우스에 의해 주창된 아리안주의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최초이자 가장 뛰어난 존재로, 무(無)에서 창조된 피조물이며,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중개자로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리스도 이해는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 등의 운동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사상적 선조로 평가된다.

(4) 아폴리나리안파

A.D. 4세기 소아시아 라오디게아의 감독 아폴리나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주장한 아폴리나리안주의는, A.D.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정죄되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인성 가운데 “이성적 영혼(인간 지성)”의 자리를 로고스가 대신 차지한다고 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이 완전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안에는 참된 인간 정신이 존재하지 않고, 그 자리에 신적 로고스가 들어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인간을 영·혼·육으로 삼분하는 이해를 잘못 적용한 결과로,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과 참된 인격성을 부정하는 심각한 오류이다.

(5) 네스토리안파

A.D. 428년경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의 사상에서 비롯된 네스토리안주의는, A.D.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정죄되었고, 이후 A.D. 436년경 네스토리우스는 추방되어 아라비아, 인도, 파키스탄, 중국 대륙 등지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지나치게 분리함으로써, 사실상 “두 인격”이 병존하는 것처럼 이해하게 만들었다. 이는 2성 1인격 교리를 부정하고, 신성과 인성이 느슨하게 결합된 두 인물로 그리스도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6) 유티키안파

A.D.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정죄되고, 681년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다시 한 번 단성론으로 규정된 유티케스와 그의 추종자들의 사상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과도하게 신격화함으로써 결국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유티케스의 주장에 따르면,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이후에는 사실상 하나의 성품만 남게 되어,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이 실재하지 않게 된다. 성경은 이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진리를 증언한다. 예를 들어 빌립보서 2장 6–8절은 그리스도께서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시되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과 참된 인성을 동시에 분명히 전제한다.

또한 요한복음 14장 8–9절에서 빌립이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달라”고 요청할 때, 예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곧 아버지를 계시하시는 성자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신다. 그리고 요한복음 16장 32절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흩어져 자신을 혼자 남겨 두게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도,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고 선포하신다. 이처럼 성경은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인간으로서 우리와 함께 계신 분임을 명확히 증언한다.

완전한 하나님의 본성과 완전한 인간의 본성은 서로 혼합되어 제3의 성품을 이루지 않으며,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두 실체가 분리된 채 병존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신성이 인성으로, 인성이 신성으로 변질되는 법도 없다. 한 인격 안에 두 본성이 온전히, 그리고 변함없이 존재하는 것이 곧 2성 1인격 교리의 핵심이다.

(7) 어거스틴과 개혁파의 인격론 이해

어거스틴은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하는 데 있어 인간 언어의 한계를 깊이 인식하였다. 그는 “인간의 언어와 논증으로 삼위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그 진리를 완전히 밝히기 위함이라기보다, 침묵함으로써 진리를 감추지 않기 위함”이라고 말하면서,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모든 표현이 본질적으로 불충분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는 “나는 세 분의 하나님을 말한 것이 아니라, 세 위를 한 하나님 안에 말한 것”이라고 하면서, 성부·성자·성령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했다.

칼빈은 어거스틴의 삼위일체 이해를 대체로 계승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일체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인간 영혼을 비유로 사용하는 어거스틴의 시도에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지만, 삼위이면서 동시에 한 본체이신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어거스틴의 기본 입장을 따른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이며, 삼위는 서로를 떠나 존재할 수 없고, 상호 침투와 상호 내주라는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삼위 각 위격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도 서로를 떠날 수 없는 관계 안에 계시며, 그 관계 안에서만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어거스틴은 “인격(persona)”이라는 용어가 삼위 간의 관계를 표현하기에 완전한 개념은 아니라고 인정했지만, 다른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삼위의 구별을 말하기 위해 이 용어를 계속 사용하였다. 이는 인격이라는 말이 하나님의 내재적 존재 방식과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적 표현이지, 인간 인격 개념을 그대로 투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나가는 말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위격으로서 “아들”이라 불리시는 분이다. 아들의 독자성은 그가 아버지로부터 나신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와 함께 성령을 내어 보내시는 분이라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성자는 본질상 성부·성령과 동일 본질을 가지신 영원한 제2위격이시다. 성자는 초자연적 능력으로 말미암아 육체를 취하셔서 이 땅에 참된 인간으로 오셨고, 동시에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교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 생에서 성자가 영원히 아버지께로부터 나시는 필연적 관계를 표현하는 고백이다. 성자의 영원한 출생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적이고 자연적인, 그리고 끊임없이 지속되는 행위이다. 성부와 성자가 동일 본질이시기 때문에, 아들은 영원 전부터 참 하나님이시다. 이제 앞서 살펴본 고대 신조들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사도신조는 사도들의 신앙 노선을 따르는 고백으로, 교회사적 신앙을 인물사적으로 표현하면 모세와 선지자들, 그리고 사도들의 신앙 고백을 계승하는 것이다. 이 신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 다시 오심을 분명히 고백함으로써, 그분의 인격과 사역을 결코 분리하지 않는다.

2. 니케아 신조는 “창세 전에 아버지로부터 나신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하나님, 빛으로부터 오신 빛, 참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참 하나님”을 고백한다. 그는 창조되신 분이 아니라 나신 분이며, 성부와 동일 본질을 가지신 주님으로 고백된다.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과 성부와의 본질적 동질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3. 칼케돈 신조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하여는 성부와 동일 본질을 타고 나셨으며, 인성에 관하여는 죄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으신 분임을 고백한다. 곧,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이 실제로 존재하지만, 한 인격 안에서 혼동·변화·분리·분열 없이 연합되어 있음을 분명히 한다.

4.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예수님을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으로서 이성 있는 영과 육신을 가지신 분”으로 고백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셨으되, 두 인격이 아니라 한 인격, 한 그리스도이시다. 한 사람 안에 영혼과 육체가 하나의 인격을 이루듯, 그리스도 안에서도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 안에서 연합되어 있다.

5. 아타나시우스 신조는 “성자는 오직 성부에게서 나셨으며, 창조되지 않으시고 낳으심을 받으신 분”임을 고백한다. 그리고 이 신앙을 완전하고 순전하게 지키지 않는 자는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선언한다. 그만큼 삼위일체와 2성 1인격 교리가 구원의 본질과 직결된 핵심 진리임을 보여 준다.

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신성과 인성은 하나의 인격 안에서 결합되어 분리되지 아니하며, 변경되지 아니하며, 혼합되지 아니하며, 혼동되지 아니한다. 이 인격은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사람 이시며, 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라고 고백한다. 개혁파 전통은 이러한 고백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2성 1인격 교리를 견고하게 유지해 왔다.

이상의 신조들을 종합해 볼 때, 예수님의 2성 1인격을 사실상 부정하는 박형택의 “메시아 과정설”은, 초대 교회 이후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한결같이 고백해 온 정통 신앙과는 전혀 다른 길에 서 있다. 그것은 교회사적으로 확립된 고백과 배치되는 이단적 사상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인격론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채, 역사적 신조와 신앙 고백서를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하는 태도는, 교회사적 관점에서 볼 때 심각한 무지와 불신앙의 표현이다. 오늘날 목회자는 물론 모든 성도는, 고대 신조와 개혁파 신앙고백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2성 1인격 교리를 정확히 알고, 이 고백 위에 굳게 서야 할 것이다. 이는 단지 과거 교리 논쟁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 여기서 우리가 참되게 예배하고 설교하며, 구원의 확신을 누리기 위해 반드시 붙들어야 할 복음의 중심 진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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