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인격적 논쟁 "시독론과 삼위일체론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이단이라고 할 수 없다"
본문
글/ 김향주 교수(대신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기독론 논쟁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 지금까지 그 인격에 대한 끝없는 논쟁 이 지속되어 왔다. 즉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문제는 인간의 한 인격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과 역사와의 관계에서 그분은 어떤 분인가? 또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본체(빌2:6)이시면 우주를 다스리시는 인격은 어떻에 나타나는가? 나아가 그분의 사역을 평가하는데 있어 그분이 행하신 사역을 시 공간의 사건(historie)으로만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그 사역의 배후에 잠재해 (potentiality) 있는 어떤 다른 인격체로서의 존재가 작용하고 있는 다른 계획이 작용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을 해석의 역사(geschichite)로 규정 할 때 우리의 이성으로 온전하게 규정해 낼 수 있는가? 등의 갖가지 이론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처럼 행하면서 비 기독교인들의 세속철학이나 미신을 도입하여 애매하고도 이상한 이론을 전개하는 소위 유명하다는 사람들의 주장을 도입하여 예수 님의 신성과 인성을 가진 메시아관,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고 그분의 주님 되심과 그 리스도의 본질을 훼손하려는 괴팍한 사람들이 수없이 나타난 사건들이 예수님의 부활 이후 지속되어 왔다. 그 부류들은 한국 땅에 비 기독교적 이론의 둥지를 튼 문선명의 통일교, 여호와 증인, 그리고 이성적 인식론을 주장하여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님의 인 격에 메스를 가하는 사특한 무리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인격과 비슷한 아주 근사치 의 척도를 들이대며 미혹의 영을 동원하여 예수님에 대한 회색주의 기독론을 끌고 들 어와 기독교의 근간을 흔들어 대는 무리들이다. 그 이론들은 예수님 당시 구약을 정 치적 메시아 사상에 입각하여 해석한 유대주의, 헬라 사상에 기인한 영지주의 (Gnosticism), 2세기로 넘어와 예수님의 인성만을 주장하는 에비온파(Ebionites) 유 대교와 기독교와 이방종교를 합하여 혼합종교를 만들려는 엘 케사이 파(El Kesaites), 구약과 신약을 대립으로 보는 말시온 파(Marcionism), 삼위일체를 반대하는 모나키 안 파(Monarchianism) 등은 예수님의 인격에 관하여 성경대로 고백하지 아니하는 이교도적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성일인격(二性 一人格, dichatomy)에 관하여 바로 알 수 있 는 자료는 이미 고대 신조에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는데도 왜 엉뚱한 주장을 하는 이 들이 여기 저기에서 나타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는 분명 역사 교회가 고백한 개혁신 학의 개념을 모르든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칼빈을 위시한 개혁신학을 무시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대로 믿는 신앙은 교회사적 신앙고백으로 돌 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은 사건은 신성을 얻는 과정이라.” 고 주장하게 되면 인간의 본질을 가진 사람이 신으로 변하는 사건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 이다. 예를 들면 저급한 동물이 어떤 특별한 사건의 과정을 겪어 수준 높은 인간의 인격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과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해괴망측한 일이 일어난 사건 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가 강렬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주장해야 할 신앙고백이 있는데 이는 교회사적 신앙고백의 신조이다. 교회사적 신앙고백은 고대신조와 종교개혁 신조로 말할 수 있다. 고대 신조는 예수님의 이성일인격(dichatomy)과 관계하여 삼위일체를 고백 한 다섯 가지의 신조이다.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 신조는 이 고대신조의 기반 위 에 성경 전체의 교리를 조직화 해서 구성해 놓은 신조이다.
모든 신조의 기본 원리는 사도신조이다. 사도신조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경세적(economical)으로 고백한 신조이다. 이 신조의 중요한 부분은 예수님의 인격과 그에 따른 사역에 관한 고백이다. 당시 로마 정부의 압정 밑에서 박해를 받던 기독교 인들은 눈으로 보고 느낀 부활의 사건을 전하기 위해 온갖 지혜를 동원하여 전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엄청난 이슈가 된 부활의 사건을 감추기 위해 로마 정부는 팔레스타 인 밖으로 부활의 소문이 나가지 못하게 봉쇄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주후 70년 로마의 장군 티토(Titus)에 의해 예루살렘은 무참하게 파괴되고 기독교인들이 사방 으로 흩어지게 됨으로 복음이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는 전초전이 되었다. 이때 복음 의 중요한 이슈가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였다. 이는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그 질문의 대답은 그 분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 이라는 이성일인격(dichatomy)의 교리가 신앙의 대상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이성일인격(dichatomy)은 신비로운 교훈이다. 신앙이 깊어가면 깊어 갈 수록 확실성을 더 해가는 성경의 교리이다. 이교도를 규정하는 아주 중요한 교리가 바로 예수님의 인격의 교리이며 또한 삼위일체의 교리이다. 이 두 가지 교리는 성경 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이루는 교리이다. 이 교리들은 아주 심오하기 하기 때문에 평 생 상고하며 하나님을 기리는 교제의 원리가 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이교도들과 신 실하지 못한 기독교인인척 하면서 애매한 기독론을 들고 나왔던 무리들에 의해 수많 은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교리는 신중하게 그리고 세심하게 다루어야 한다. 즉 고대신조의 기독론의 원리를 벗어나서 조금이라도 다른 말을 하게 되면 이 교도로 취급을 받게 된다. 이제 고대신조에 나타난 예수님의 인격의 교리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1. 사도신조
사도신조는 사도들이 제작했다는 말이 아니고 그들의 신앙의 노선을 따른다는 의 미의 신조이다. 교회사적 신앙고백을 인물사적으로 정의할 때 모세, 선지자들, 그리고 사도들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눅16:31에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엡2:20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자라.” 라는 말씀을 인물사로 볼 때 교회사적 신앙고백은 모세, 선지자들, 그리고 사도들의 신앙을 전수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 신앙고백의 대상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다. 사도신조는 성경의 편집과 더불어 고백서로 정해졌다. 사도신조는 세례를 받을 성도들의 교육용으로 채용하였으며 이교도를 규정하는 지침서로 사용했다. 기독 교를 바로 아는 지침서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사도신조를 왜곡하거나 불신하는 경우 이교도로 취급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신조의 중심 내용이 바로 예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이다. 그 중의 중심 내용이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이다.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은 동일선상에 두고 신앙을 고백해야 한다. 즉 예수님을 완전한 하나님이며 완전한 무죄 한 인간이기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재림하시는 구 세주의 사역을 완성하신 분이시다. 이 신앙고백에 대한 작은 부분이라도 수납을 못하 면 안 된다.
2. 니케아 신조
A.D. 325년 로마의 콘스탄틴(Constantine) 황제는 교회가 갈라지게 되면 거대한 로마의 국가가 갈라지게 됨을 직시하고 교리를 통일 시켜 교회의 일치를 등에 없고 국가의 분열을 막으려는 시도에 들어갔다. 당시 아리우스(Arius)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성부의 신성과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성자는 일종의 피조물로서 시작이 있었다 고 주장했다. 이는 창세이전의 영원세계에서의 삼위일체의 존재를(신6:4, 렘10:10, 빌 2:6, 2:13, 요일 5:7, 요1:1, 14, 요일5:20, 골2:9, 롬9:5, 딤전2:5) 부정하는 비성경적 주장이다. 이에 반하여 아타나시오스(Athanasios)는 그리스도는 영원한 아들이요 동 시에 아버지와 영원한 본질(homousios)이다 라고 주장했다. 이 신앙고백은 교회 역 사를 통해 지금까지 지켜온 교리이다. 이 교리에서 벗어나면 예수님의 2성 1인격에 흠집을 내는 결과를 초래 하므로 이교도로 취급해야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유일 무이하시고, 전능하시며 천지의 모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 유일하신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온 우주에 앞서 계셨고, 참 신이시며, 참 빛이시며, 참 신 가운데 신이시며, 하나님에게서 나셨 고, 창조함을 받지 않으셨고, 성부 하나님과 동일 실체이시며, 그로 말미암아 모든 만물이 창 조되었고, 우리 인간들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 오셨고,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 아에게서 인간으로 나셨고,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리도에게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는 고난을 받으시고, 장사함을 받으셨으나, 제 삼일째 되는 날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따 라 다시 살아 나셨고, 하늘에 오르사 성부의 오른편에 앉으셨으며, 장차 산 자들과 죽은 자들 을 심판하려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것인데 그의 나라는 영원무궁합니다. 그리고 나는 주님 되시며 생명의 공급자가 되시는 성령을 믿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셨고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며 그는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분입니다. 나는 또한 거 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나는 죄를 용서해 주는 한 세례만을 인정하며 죽은자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바라봅니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 라는 문제는 단순한 시공간의 존재에 대한 정의 를 넘어서야 한다. 예수님의 인격과 존재를 정의하는 데는 구약의 예언, 예언대로 오 신 확실한 역사적 증거, 초자연적 하나님의 실체와 연관된 아들로서의 존재, 시공간에 있어서의 역사적 증거, 시공간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해석, 그리고 그분의 사역 등이 올바로 증거되고 해석되어야 그 인격적인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 2천년 이상의 역사 를 통해 예수님의 인격, 사역, 그리고 존재에 대한 엄청난 논쟁과 시비가 있었다. 거 기에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단순하고도 심오한 베드로의 고백이 수없는 파장을 일으켜 삼위일체론과 연관되어 수많은 생명이 파리 목숨처럼 사라져 갔다. 이는 이 신앙고백이 너무나 무거우며, 심오하며, 중대한 내용 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가? 라는 물음에 기독교인으로서 교회사적 신앙고백에서 조금이라도 빗나가는 일이 있다면 그는 바로 이교도의 탈을 벗을 수가 없을 것이다.
3.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
A.D 381년 데오도시우스 황제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제 2회 세계기독교교리를 정 립하기 위한 종교회의를 개최하였다. 그 이유는 니케아 회의에서 세계 종교회의에 대 한 계속된 기독론의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개최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인격론은 필연적으로 삼위일체론의 교리로 관련 시킬 수밖에 없는 신앙 고백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라는 의문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인격 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2성 1인격의 교리는 삼위일체의 교리와 다른 부분이 있지만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의 2성 1인격은 서로 전혀 분리 되지도 않고, 전혀 혼합 되지도 않고, 전혀 혼돈 되지도 않고, 전혀 변화되지도 않고, 전혀 대립 되지도 않는다. 라고 아타나시오스 신앙고백서에 말씀하고 있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앙고백 하는 데로 연관이 된다.
삼위에 있어 한 위가 다른 한 위에 앞서거나 뒤에 계신 것이 아니고 한 위가 다 른 한 위보다 크거나 작을 수 없다. 삼위가 일체이시며 일체가 삼위인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으셔야 한다. 동시에 영원한 구원을 얻는 데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 육신에 대하여 성경대로 믿어야 한다. 완전한 하나님이시오 완전한 인간으로서 이성 있는 영과 인간의 육신으로서 생존하신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인 간이 되셨으나 둘이 아니오 한 분 그리스도일 뿐이다. 한 인간이 영혼과 육신을 가졌 듯이 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오 동시에 인간이시다.
이처럼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예수님의 인격론이 삼위일체론으로 전개되는 신앙고백을 니케아 신조를 기반으로 삼아 전개해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마의 계 교는 끊임없이 참신한 신앙고백을 하는 교회를 침투하여 회색주의 기독론을 주입시키 기 위해 갖가지 전략을 꾀하고 있었다. 유티케스((Eutyches) 주의는 신성과 인성의 연합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양성의 구별을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네스토리우 스(Nestorius)파는 경교(景敎)라고 불리우는데 신성과 인성의 불일치를 주장하여 신인 - 46 양성이 전혀 혼합 될 수 없고 분리 될 수 없다는 교리를 무시하여 버렸다. 또한 아폴 리나리우스(Apollinarius)는 헬라철학의 3분설을 도입하여 예수님께서 죄를 지을 수 없는 이유는 로고스가 예수님의 영의 자리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인성을 약화시키는 이론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편협적인 예수님의 인격론을 다시 정상화 시키기 위해 모인 세계교회 제 3차 회의가 칼케돈 신조 모임이 었다. 이 때 520명에서 630명이나 되는 주교와 감독이 모였는데 교황 1세의 사절 2 명과 아프리카에서 도망 온 두 감독을 제외하고는 모두 동방교회의 주교들이었다. 당 시 기독론 논쟁에서 신인 양성에 있어 어느 쪽이 더 우세한가? 하는 논쟁이 극심하게 대두 되었다. 그러므로 칼케돈 신조를 결정 짓기 위한 모임은 기독론에 대한 이견이 계속 대두 됨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인 양성을 종결 지어 더 이상의 시비거리를 잠재우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칼케돈 신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인 양성 을 좀더 구체적이며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실하게 고백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에서 중요한 관점을 논증할 내용이 있다. 그것은 교회사를 통 해 예수님의 2성 1인격과 삼위일체에 관한 시비거리가 지속되어 온 점이다. 즉 유출 설, 양태설, 종속설, 그리고 세력론 등이다. 이러한 이론들은 예수님의 신인 양성에 대한 균형과 인격에 대한 성경의 말씀이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는 교리를 훼손하는 주장이다. 좀 더 세분하여 설명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신성으로 부터 파생되어 나온 인격체로 보고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신성을 가진 자로 보는 이교도적 주장이 주류를 이루었다. 또한 예수님의 인격체를 질적 변화 또는 상황에 따른 상태의 변화를 주장 하는 이론인데 질적 변화를 삼위일체에 적용하여 물이 수증기로 그리고 얼음으로 변하는 물질적 상태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앞에서 보면 인간의 모습으 로 뒤에서 보면 신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주장이다. 나아가 예수님은 원래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어느 과정을 통해 신성의 강한 인격적 감화 를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변했다는 신성의 세력이 독재적으로 작용했다는 괴상한 이 론은 자유주의 신학에서 자주 발견되는 내용이다.
2천년 교회사를 통해 수없이 등장한 예수님의 인격론에 대한 이교도적인 주장이 지금도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 이론들은 다음과 같이 나열할 수 있다.
1) 예수님의 인격론을 바로 알지 못하는 자들은 교회사적으로 고백되어진 신앙고 백서에 대해 무지한 소치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분명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 8장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라는 항목에서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2항의 기독론에서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참되시고 영원 하신 하나님이시고, 성부와 한 본체이시며, 동등하시다. 때가 차매 사람의 본성을 취 하되 인성에 속하는 모든 본질적 고유성과 공통적 연약성을 가졌으나 죄는 없으시다. 왜냐하면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의 본질을 취하여 잉태 되셨기 때 문이다. 그러므로 온전하고 완전하며 구별되는 두 본성, 곧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 안에서 변함이 없이, 혼합 됨이 없이, 혼동 됨이 없이, 서로 분리될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 이 분은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시나 한 분 그리스도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요1:1,4. 요일5:20. 빌2:6. 갈4:4. 히2:14-17. 4:15. 눅 1:27-35 골2:9. 롬9:5. 밷전3:18. 딤전3:16. 롬1:3-4. 딤전2:5).” 라고 고백하고 있다.
3항에는 “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신성과 결합된 그의 인성에 있어서 한량 없이 성령으로 성화되고 기름 부음을 받으셨으니 그의 자신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 를 가지셨다. 성부께서는 모든 충만이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을 기뻐하셨다. 이는 끝까 지 그리스도께서 거룩하고, 흠이 없고, 순결하고, 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여 중보자 와 보증인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완전하게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이 직무는 예 수께님서 스스로 취한 것이 아니며 그의 아버지의 부르심에 의한 것이었으니 성부께 서는 모든 능력과 심판을 예수님의 손에 맡기시고 그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명령하셨다(시45:7. 요3:34. 골1:19. 2:3. 히7:26. 요1:14. 행10:38. 히12:24. 7:22. 히5:4-5. 요5:22,27. 마28:18. 행2:36).” 라고 고백하고 있다.
7항에는 “그리스도께서는 중보의 사역에 있어 신성, 인성, 그리고 양성 모두에 따라 행동하시는데 각각의 본성에 의해 각 본성 자체의 고유한 일을 하신다. 그럼에 도 그 인격의 통일성 때문에 한 본성의 고유한 것이 때때로 성경에서 다른 본성으로 불려지는 그 인격에 돌려지기도 한다(히9:14. 벧전3:18. 행20:28. 요3:13. 요일3:16).” 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렇게 예수님의 인격을 명시적으로 고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고백을 벗어나 이상하고도 호리는 말로 성경의 본질을 훼손하려 드는 무리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 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하려 드는지 알 수가 없다. 이들의 잘못된 주장을 박멸하 여 교회를 어지럽히게 할 수 없도록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2)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내용을 본문(text)을 중심하여 해석하기보다 상황에 맞 추어 주제중심(context)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날 때 예수님의 인격론과 삼위일체에 대한 해석을 엉뚱한 방향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려고 한다. 오늘 날 자유주의 신학이 너무나 만연하여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기초적인 관점 조차 파악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변해버렸다. 극단적인 기독론 중심의 자율주의 신 학은 신론 중심의 신학을 짖이겨 버리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아집속에 가 두어 두고 인간 해방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비기독교적 기독교인들은 가 증한 자기 중심의 사상을 말할 수밖에 없다. 그 내용이 바로 예수님의 2성1인격을 성 경대로 고백하지 못하는 우둔한 발상을 하여 이상한 말로 회색칠을 하고 나선다. 그 내용들이 바로 신성을 약화시키는 말, 인성을 신성에 대입시켜 인성 우선주의 교리를 내 세워 성경에 따라 올바로 말하지 않고 신인 양성을 기울어지게 주장하는 말, 그리 고 인성이 신성으로 변하는 과정설을 말하는 주장 등이다. 극단적인 기독론주의적 이 성주의 신학은 급진주의 신학이라 불리어 지는데 예수님을 인간 해방자, 사회 사업가, 그리고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위해 죽은 혁명가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들의 신 학은 예수님의 인격론에는 근접할 수 없는 괴팍한 이론을 신학이라는 명목으로 들이 대고 있다.
예수님의 인격적 신비는 신앙이 깊어 갈수록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신앙이 더욱 확실해 진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넗어지고 방대해 진다. 말씀의 깊이를 모르는 신앙인은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깊이를 모르는 것과 비례한다. 유명하다는 유대인들 이 왜 예수님을 박대 했을까? 하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그들은 현세에서의 정치적 메시아 사상에 고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기독론 중심의 현세주의 신학은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 와의 관계를 성경에 나온대로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사회복음주의(missio dei) 개념 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신인 양성에 대한 개념조차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그들 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3) 이교도적 현세주의에 치우치는 자들이 예수님의 인격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 다. 소위 오늘날 이단이라고 불러지는 집단들이다. 이교도를 규정할 때 (1) 예수님의 인격론을 어떻게 규정하느냐? (2) 예수님의 인격론에 연관하여 삼위일체를 어떻게 규 정하느냐? (3) 예수님의 재림의 형태와 날자를 어떻게 규정하느냐? 의 순서로 말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정통주의 개혁신학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2성1인격, 삼위일체 론에서 삼위가 전혀 분리될 수 없고, 혼합될 수 없고, 변할 수 없고, 혼돈될 수 없다 는 성경의 교리를 무시하고 피안의 세계를 강조하여 그들만의 특별한 집단체를 만들 어 재산을 탈취하는 수법을 사용한다. 거기에는 예수님의 인격론과 삼위일체론을 뒤 로 돌리고 세상을 악과 선으로 분리하여 2원론(Dualism)을 강조하여 그들만의 세계 는 세상의 악과 분리된 조직체로 거짓 선전을 하고 있다. 거기에서 노동의 착취와 재산의 탈취를 일삼으며 교주의 배를 불리는 일을 자행하고 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만 강조하는 기독교를 말하면 이는 이교도의 신앙인이 될 것이며 예수님만을 강조해도 마찬가지이며 성령만을 강조해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하나님 중심의 이교도들은 여호와 증인이며, 예수님 중심의 이교도들은 급진주의 신 학을 강조하는 자들이며, 성령 중심의 이교도들은 성령을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힘으로만 생각하는 자들일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을 볼 수 있으며 만질 수 있는 신성으로 말씀하고 있다(요일1:1-3). 한편 그 예수님은 태초 부터 존재하신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성도들은 그분과의 교제를 해야 되는 관계를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 교제는 무한하게 깊고 넓다. 한없이 깊고 넓은 교제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젖만 먹는 어린이의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그 신앙은 바로 말씀으로 다져지는 신앙이어야 한다고 히5:11-14절 에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과의 깊은 인격적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말씀에 깊이를 체험해야 한다. 그 체험을 멜기세덱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고 히5:11-12까지 말씀하고 있다. 멜기세덱은 인간적 족보가 없다. 그러나 시공 간 세계에서 보고 대화를 나눈 분이었다(히7:2-3). 마찬가기로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 신 분으로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시공간 세계에 오신 분이다. 이러한 신비를 체험하 기 위해서는 말씀의 깊이를 바로 깨달아야 한다. 그럴 때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 오 완전한 인간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이제 성경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고백한 교회사적 신앙고백에 상세하게 진술된 - 49 내용들을 상술해 보려고 한다. 예수님의 2성 1인격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논쟁 거리를 양산해 낸 이론이라고 말하면 누가 감히 이를 반대할 사람이 있는가? 니케아 신조가 완성된 후에도 60여년간 많은 시비거리가 생겨나게 되었다. 분명히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정의가 도출되었으나 너무나 깊고 넓은 구세주 예수님의 인격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인 정비가 필요하였고 또한 필연적으로 삼위일체와 관련되어 신앙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교리가 구성되다 보니 예수님의 2성 1인격의 교리와 삼위일체의 교리 가 동반하여 정립하게 되었다. 그래서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에는 성령을 신성과 동질성으로 고백하는 내용을 첨가하였고 일부분 수정하여 발표하게 되었다. 그리고 A.D 451년 대오도시우스 2세가 칼케돈에서 기독론에 대한 신인 양성에 대하여 어느 쪽이 더 우세한가? 라는 시비를 잠재우기 위해 신인 양성의 교리를 확정지었다.
이제 결론적으로 고대신조를 총 정리하여 예수님의 2성 1인격과 삼위일체의 교리를 정리한 아타나시우스 신조를 소개하고 그 의미를 상고해 보자. 아타나시우스 (Magnus Athanasios, 295-372)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하여 그 곳에서 신학원인 교리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감독인 알렉산더 밑에서 신학도로서 집사 직분을 수행 하다가 325년 니케아 회의에 참석하여 아리우스에 대항하는 전사로 등극하였다. 그리스도의 신인 양성을 주장하여 336년 아리우스파를 지지하는 황제의 세력에 밀려 트 리르로 추방되었다가 337년 큰스탄티누스가 죽자 돌아왔으나 339년 다시 로마로 추방 되었다가 346년 서방 황제 콘스탄스의 영향으로 회복되었다. 그는 356년 다시 아쿠일레이아로 추방당했고 362년 애굽의 사막지대로 네번째 추방을 당했다.
어쩌면 올바른 신앙을 지키려는 선배들의 신앙행로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제자 들과 같이 나그네의 길과 수난의 길과 같았는가? 그는 그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 의 양성을 고수하는 신앙을 지키는 중에 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아리우스파에 승리하여 정통신학을 정립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아타나시오스 신조는 사도신조, 니케아 신조와 더불어 고대 3대 신조가운데 하나 로 꼽힌다. 이 신조의 기원과 출처로 보아 아타나시오스라는 명칭이 합당한가? 하는 데는 의문의 어지가 있다. 이 신조를 아타나시오스가 저술한 것이라고 서방교회에서 인정한 시기는 8세기 말 경이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는 11세기 까지도 이 신앙고백 의 저술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늘날 까지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결국 이 신조의 저술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미지수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고백서 는 교회사에 길이 빛나는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서로 남아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누구든지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것 이전에 먼저 이 신앙을 소유해야 한다.
2. 누구든지 이 신앙을 완전하고 순결하게 지키지 않으면 틀림없이 영원한 멸방을 받 을 것이다.
3. 이 신앙이란 다음의 것들이다. 삼위 자체가 일체이고 일체 자체가 삼위이신 유일 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4. 이 삼위는 혼합한 것도 아니고 그 본질을 나눈 것도 아니다.
5. 왜냐하면 아버지의 한 인격(위)과 아들의 다른 인격(위)과 또한 성령의 다른 인격 (위)이 계시기 때문이다.
6.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격은 모두가 다 하나이며 그 영광도 동일하며 그 위엄도 함께 영원한 것이다.
7.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8. 성부께서 창조함 받지 않으신 것 같이 성자도 창조함 받지 않으셨으며 성령도 창 조함 받지 않으셨다.
9. 성부를 다 이해할 수 없는 분 같이 성자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고 성령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다.
10. 성부께서 영원하심 같이 성자도 영원하시며 성령도 영원하시다.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 영원한 분들이 아니시며 한 영원한 분이시다.
12. 창조되지도 않으셨고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 세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창조 되지도 않으셨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단 한 하나님만이 계실 뿐이다.
13. 성부께서 전능하시듯이 성자와 성령도 전능하시다.
14. 그러나 세 하나님의 전능자가 계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한 하나님의 전능자가 계실 뿐이다.
15. 성부가 하나님이듯이 성자와 성령도 하나님이시다.
16. 그럼에도 세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만이 계실 뿐이다.
17. 성부께서 주님이시듯이 성자도 성령도 주님이시다.
18. 그럼에도 주님이 세 주가 아니라 한 주님이실 뿐이다.
19. 우리는 이 각각의 삼위께서 그 스스로 하나님이시오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기독교 진리로 받는 바이다.
20. 따라서 세 하나님이 계시며 세 분 주님이 계시다는 말을 참 기독교인은 금한다.
21. 성부는 그 무엇으로부터 만들어지지 않으셨으니 곧 창조함을 받지도 않으시고 나 지도 않으셨다.
22. 성자는 성부에게서만 나시며 지음을 받았거나 창조되신 것이 아니다.
23.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보냄을 받으셨으나 지음을 받았거나 창조되었거나 발 생된 분이 아니시고 나오신 것이다.
24. 따라서 세 분 성부가 아닌 한 분 성부, 세 분 성자가 아닌 한 분 성자, 세 분 성 령이 아닌 한 분 성령만이 계실 뿐이다.
25. 이 삼위에 있어서 그 어느 한 위가 다른 한 위에 앞서거나 뒤에 계신 것이 아니 며 어느 한 위가 다른 위보다 크거나 작을 수도 없다.
26. 다만 삼위가 함께 영원하며 동등하다.
27. 따라서 앞서 말한 대로 이 모든 것에서 삼위가 일체이시며 일체가 삼위인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으셔야 한다.
28. 그러므로 구원 받으려는 이는 삼위일체에 관하여 이와 같이 믿지 아니하면 안 될 것이다.
29. 동시에 영원한 구원을 얻는 데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하여 올 바로 믿어야 한다.
30. 올바른 믿음이란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오 동시에 인간이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31. 그는 성부의 본질로부터 나신 신이시며 이 세상이 생기기 전에 나신 자요 동시에 인간으로서 그 어머니의 본질로 부터 이 세상에서 나신 분이시다.
32. 완전한 하나님이시오 또한 완전한 인간으로서 이성 있는 영과 인간의 육신으로서 생존하신다.
33. 신성으로서는 성부와 동등하시나 그의 인성으로서는 성부보다 낮으신 분이시다.
34. 비록 그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이 되시었지만 둘이 아니오 한 분 그리스도이실 뿐이다.
35. 하나 됨에 있어서는 그의 신성이 육신으로 변화된 것이 아니라 육신화(肉身化가 아니며) 인간의 몸을 취한(그의 인성을 신성 안에 받아들임으로서) 하나님이 되신 분이시다.
36. 온전히 하나인데 그 본질이 혼합된 분이 아니라 품격의 통일성으로서 하나 되신 분이시다.
37. 한 인간이 영혼과 육신을 가졌듯이 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오 동시에 인간 이시다.
38. 그 분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음부에 내려 가셨다가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다.
39. 그는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곧 성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40. 거기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실 것이다.
41. 그분이 오실 때에 모든 사람들은 육체로 부활할 것이며
42. 자신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43. 그리고 선한 일을 행하는 자는 영생으로 나가고 악한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한 불에 들어갈 것이다.
44. 이것이 교회의 참 신앙이며 이를 신실하게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위의 44개 조항을 탐구해 볼 때 예수님은 절대 어느 과정을 통해 “주님은 그리 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메시아의 관념을 단 한 부분이라도 유출해 낼 수가 없다. 위의 조항들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총체적으로 따져 결론지을 경우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전 즉 시간의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신 완전한 하나님이시었으며 사람의 육을 취하신 죄없으신 완전한 사람이심을 말씀하고 있다(요일5:20. 빌2:6. 갈4:4-5. 요1:1,14. 히2:14. 4:15. 눅1:35. 요일1:1-2 골2:9. 롬9:5. 딤전2:5).
만약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성령으로 잉태되지 않고 어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 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칭함을 받게 된다면 아브라함, 모세, 엘리아, 베드로를 위시하여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바울도 위대한 신앙의 체험을 통한 과정이 있었으 므로 그들도 우리와 같은 양자로 칭함을 받는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 부터 직접 보내 신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가정을 추리할 수 있다. 이런 근거 없는 사악하고 가증한 이론으로 예수님의 인격에 흠집을 가하여 성도들을 미혹하여 교회를 파괴시키는 이론에 쐐기를 치고 교회의 근처에도 오지 못하도록 정통주의 신학에 철옹성을 쌓아야 할 것 이다.
특별히 우리는 아타나시오스 신앙고백 1항과 2항에 선언하고 있는 저주문에 주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이 신앙을 소유해야 하며 이 신앙 을 지키지 아니하면 틀림없이 영원한 멸망을 받을 것이다.” 라는 문구에 온 영혼의 옷깃을 여미고 주시해야 한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어느 과정을 통해 신성을 소유하게 된 메시아로 지칭되었다면 이 고백서 8항, 10항, 12항, 15항, 22항, 25항, 29항, 30 항, 31항, 35항 등은 성경에 기반을 두지 않은 엉터리 신앙고백이 된다는 말이다. 이미 성경에 확실하게 진술 되어진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내용이 허위가 되고 말 것이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인격을 아무렇게나 거짓되고 허황한 말로 포장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는 일들은 이미 초대 교회에서부터 지속적으로 교회의 역사 가운데 돌출되었던 이론들이다. 기독론 논쟁이 구체화 되었던 3세기에 나타난 이단들은 오늘날의 이단들이 주장하는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비툴어진 주장과 흡사한 내용들이었다. 그 내용들을 설명하면 다름과 같다.
(1) 사보나타 바울은 그가 안디옥 교회 감독으로 있을 당시(260-272) “예수님에게 로고스가 모세나 다른 선지자들보다 강력하게 역사하여 메시아가 되었다.” 라고 주장하여 269년 이단으로 정죄 되었다.
(2) 아리우스는 하나님만 시작이 없고 영원한 분이시다. 아들은 시작이 있는 분으로 보았다. 그는 “로고스가 인간 예수님의 자리에 들어갔기 때문에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 아니었고 또 로고스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완전한 하나님일 수가 없다.” 라고 주장하여 물의를 일으켜 325년 니케아 회의를 소집하게 된 원인을 제공하였다. 결국 그는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3) 또한 라오디게아의 감독 아폴리나리우스(Apollinarius)는 헬라철학의 삼분설 을 주장하여 “로고스가 예수님의 자리에 들어갔기 때문에 예수님은 죄를 지을 수 없 다.”라고 주장하여 예수님의 완전한 신인양성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와 381년 큰스 탄틴 대회에서 이단으로 정죄 되었다.
(4) 콘스탄티노플의 감독 네스토리우스(Nestorius)는 양성의 교통을 부인하여 “신 성은 그리스도의 인성의 수난에 동참하지 아니했다.” 라고 주장하여 431년 제 3차 세 계교회 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5) 콘스탄티노플 근교의 수도원 원장이었던 유티케스(Eytyches)는 양성 연합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양성의 구별을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성육신 때 그리스도의 양 성은 하나의 신인 양성은 단성(單性)으로 연합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결국 양성의 연합문제는 제 4차 세계 대회를 칼케돈에서 451년에 모여 ”양성은 혼동, 변화, 분리, 그리고 분열이 없이 연합되어 있음을 가결해 양성연합론을 부장했으나 신성과 인성의 의지론에 의문이 제기 되어 단성론(單性論)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53년 큰스탄티 노플에서 제 5차 세계 종교회의를 열게 되었다. 여기에서 칼케돈 신조를 재 확인하면 서 신성과 인성의 두 의지론은 인간의 의지는 신적 의지에 종속 되지만 신적 의지에 종속된다는 양의론(兩儀論)을 채택함으로 교회사에서의 2성 1인격에 대한 논쟁을 680 년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종지부를 찍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인격론을 논할 때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위에 진술된 아 타나시우스 신조와 다른 이론이 나타날 때 이는 이단으로 결정할 수 밖에 없다는 점 을 명심해야 한다. 이단의 결정은 예수님의 인격론과 삼위일체의 인격론에 따라 그 방향이 결정된다. 18세기 이후 계몽주의(Enlightenment) 사상은 예수님의 인격론이 치명타를 가하는 쓰레기 이론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뒤를 이어 19세기 자연주의 사상은 예수님을 신성과 전혀 무관한 이론들을 서구의 교회에 쏟아 놓았다. 그 결과 예수님의 사역에 관한 기적의 역사를 모두 제거하는 운동이 경쟁적으로 벌어지는 진 풍경을 양산해 냈다. 한마디로 성경을 하나의 이야기 거리로 전락시켜 하나의 소설보 다 더 가치없는 서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모든 신앙의 시초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 게 보느냐? 에서 그 근원을 찾게 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 는 베드로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으로 전수 되어야 한다. 이것 이외에 어떠한 이론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다른 이름들이 있다. 메시아, 예수, 구세주, 그리고 왕 등이 있다. 그 이름들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오직 구세주 예수님,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가슴에 안고 일생 하늘나라를 앙망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깊은 교제를 영위해 나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만 영광을 받으시어 죄인들이 그 은혜에 잠기게 해 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