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맞선 아타나시우스의 신앙으로, 새 시대의 길을 열어야 한다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7-28 07:10
본문
서구 문명의 심장부인 핀란드에서 성경적 진리를 선포했다는 이유로 신앙인이 법정에 서고, 대한민국 국회 앞에서는 ‘성평등’이라는 미명 아래 창조 질서를 허물려는 시도에 맞선 거룩한 저항이 예고되고 있다. 오늘의 뉴스는 세속적 가치관의 거센 파도가 교회의 문턱을 넘어 우리 신앙의 심장부를 위협하는 시대의 자화상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영웅과 구원자를 찾는다. 폴 쿨터의 분석처럼, 세상은 복잡한 현실을 트럼프나 푸틴 같은 특정 인물의 서사로 단순화하며 그에게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인간 군주에 대한 갈망은 언제나 더 큰 실망과 공허로 귀결될 뿐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참된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증언한다. 4세기, 아리우스주의의 이단적 가르침이 제국의 권력과 결탁하여 교회를 휩쓸 때,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는 홀로 ‘아타나시우스 콘트라 문둠(Athanasius contra mundum)’, 즉 ‘세상에 맞선 아타나시우스’로 섰다. 그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부인하는 시대의 흐름에 굴복하지 않고 다섯 번의 유배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정통 신앙을 수호했다. 그의 외로운 투쟁은 훗날 니케아 신경의 확립으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교회의 신앙고백의 초석이 되었다. 아타나시우스는 인간 영웅이 아니라, 오직 진리이신 그리스도께 닻을 내렸기에 거대한 세상의 파도를 이겨낼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새로운 아리우스주의와 싸우고 있다. 성경의 진리를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시대의 정신을 교회의 새로운 기준으로 삼으려는 도전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 에비 로데만의 지적처럼 과거의 성공 방식에 안주하는 것은 영적 타성에 불과하다. 우리는 아타나시우스처럼 변치 않는 진리 위에 굳건히 서되, 동시에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다가갈 새롭고 지혜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군주들이 분노하며 서로 꾀하여 하나님과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할 때, 우리는 하늘 보좌에서 웃으시는 전능자를 바라보아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조류에 편승하는 유람선이 아니라, 진리의 깃발을 높이 들고 폭풍우를 헤쳐 나가는 전투함이다. 한국 교회는 이제 다시 한번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 세상의 거짓된 평화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와 정의를 선포하는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시편 2편의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시편 2:1-4)
역사는 우리에게 참된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증언한다. 4세기, 아리우스주의의 이단적 가르침이 제국의 권력과 결탁하여 교회를 휩쓸 때,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는 홀로 ‘아타나시우스 콘트라 문둠(Athanasius contra mundum)’, 즉 ‘세상에 맞선 아타나시우스’로 섰다. 그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부인하는 시대의 흐름에 굴복하지 않고 다섯 번의 유배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정통 신앙을 수호했다. 그의 외로운 투쟁은 훗날 니케아 신경의 확립으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교회의 신앙고백의 초석이 되었다. 아타나시우스는 인간 영웅이 아니라, 오직 진리이신 그리스도께 닻을 내렸기에 거대한 세상의 파도를 이겨낼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새로운 아리우스주의와 싸우고 있다. 성경의 진리를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시대의 정신을 교회의 새로운 기준으로 삼으려는 도전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 에비 로데만의 지적처럼 과거의 성공 방식에 안주하는 것은 영적 타성에 불과하다. 우리는 아타나시우스처럼 변치 않는 진리 위에 굳건히 서되, 동시에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다가갈 새롭고 지혜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군주들이 분노하며 서로 꾀하여 하나님과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할 때, 우리는 하늘 보좌에서 웃으시는 전능자를 바라보아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조류에 편승하는 유람선이 아니라, 진리의 깃발을 높이 들고 폭풍우를 헤쳐 나가는 전투함이다. 한국 교회는 이제 다시 한번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 세상의 거짓된 평화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와 정의를 선포하는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시편 2편의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시편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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