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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의 법’을 넘어, 은혜의 기억을 향하여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9-2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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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스크린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최근 화제가 된 영화 ‘오디세이’는 고대 그리스의 환대 문화, 이른바 ‘제우스의 법’을 조명한다. 낯선 이를 신이 변장한 모습일 수 있기에 극진히 대접해야 한다는 이 법칙은, 표면적으로는 숭고해 보이나 그 이면에는 보상에 대한 기대와 징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계산적 동기가 자리한다. 이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한 신앙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신앙 행위는 과연 무엇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주일 성수, 십일조, 봉사의 열심이 혹 ‘제우스의 법’처럼 하나님의 복을 얻어내거나 화를 피하려는 거래적 심리의 발로는 아닌가. C.S. 루이스의 저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노련한 악마 스크루테이프는 조카 웜우드에게 인간을 유혹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 그들의 신앙을 내면의 인격적 교제가 아닌 외적인 종교 행위의 목록으로 전락시키라고 조언한다.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에서 오는 자발적 사랑과 감사가 아니라, 의무와 관습,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얽매인 신앙은 생명력을 잃고 만다는 통찰이다.

최근 한 언론이 조명한 사이클 선수의 일화는 이러한 영적 현실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투르 드 프랑스 우승을 목전에 둔 선수가 잠시 아이스크림의 유혹에 빠져 경기를 망친 이야기는, 사소한 욕망과 불순종이 우리의 영적 경주에 얼마나 치명적인 무게를 더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신앙의 여정에서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거대한 핍박이나 시험이 아닐 때가 많다. 오히려 일상 속에서 무심코 저지르는 작은 불평, 판단, 그리고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이야말로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는 보이지 않는 족쇄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이제 ‘제우스의 법’과 같은 기복적, 거래적 신앙의 껍데기를 벗고, 구원의 은혜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하는 감사와 사랑의 신앙으로 회귀해야 한다. 우리의 환대는 낯선 이에게서 신의 모습을 찾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나그네 되었을 때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때문이어야 한다. 우리의 순종은 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모든 짐을 대신 지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하기 때문이어야 한다. 교회가 가르치고 성도가 붙잡아야 할 것은 행위의 목록이 아니라, 모든 행위의 근원이 되는 복음의 감격이다. 이 감격의 회복이야말로 한국 교회를 다시 달리게 할 유일한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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