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는 세상 속, 흩어지지 않는 말씀의 권위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10-09 07:10
본문
시대의 지축이 흔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포화는 21세기 문명 사회의 심장부에서 야만적인 강제 이주의 비극을 낳았고, 서구 사회의 심장부에서는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법안이 교회의 목을 조여오고 있다. 가치관은 파편처럼 흩어지고, 공동체는 이념의 칼날에 베여 신음한다. 이러한 혼돈의 파노라마 속에서, 우리는 두 개의 상반된 풍경을 목도한다. 하나는 90년 만에 자국어의 옷을 새로 입은 페로 제도의 신약성경이며, 다른 하나는 잿더미 속에서 4만 명에게 세례를 베푼 우크라이나 교회의 강인한 생명력이다.
이 두 사건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흩어지고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결코 흩어지지 않는 영원한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웅변적으로 증거하기 때문이다. 페로 제도의 성경 번역은 단순히 낡은 어휘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언어적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특정 시대나 문화에 박제된 화석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세대의 심장 속으로 흘러 들어가야 할 생명수임을 선포하는 신앙고백이다. 언어는 시대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그 그릇이 변할 때마다 새로운 그릇에 영원한 진리를 담아내는 수고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거룩한 책무이다.
16세기, 윌리엄 틴들은 당대의 공용어였던 라틴어 성경의 빗장을 풀고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다가 화형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는 “쟁기질하는 소년이 교황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걸었다. 그의 희생은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고, 평신도들의 손에 들린 자국어 성경은 영국의 역사를 바꾸는 영적 동력이 되었다. 페로 제도의 새 번역 성경 역시, 이 거룩한 전통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그들의 수고는 이 시대의 ‘쟁기질하는 소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생생한 음성으로 들려주려는 거룩한 열망의 산물이다.
바로 그 말씀의 능력이 우크라이나의 폐허 속에서 기적을 꽃피우고 있다. 미사일이 교회를 무너뜨리고 성도들을 흩어버렸지만, 그들의 심장에 새겨진 말씀은 빼앗지 못했다. 오히려 흩어진 성도들은 움직이는 교회가 되어 피난민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고,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세례를 베풀었다. 이는 박해를 피해 흩어진 초대교회 성도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세계 선교의 문을 열었던 사도행전의 역사가 오늘날 재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말씀 위에 선 사람들의 공동체이며, 그 공동체는 어떤 물리적 파괴로도 소멸될 수 없음을 증명한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불변하는 진리의 말씀을 어떻게 붙들고 있는가. 북아일랜드의 입법 시도와 같은 세속적 도전 앞에서, 우리는 성경적 가치를 선명히 변증하며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전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여성 리더십과 같은 내부적 논의 앞에서, 우리는 평등이라는 세속적 구호를 넘어 성경이 말하는 ‘동역’의 원리를 건강하게 세워가고 있는가. 모든 해답은 말씀 안에 있다. 한국 교회는 페로 제도의 번역가들처럼 시대의 언어로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고, 우크라이나 교회처럼 고난 속에서도 말씀의 능력을 살아내야 한다. 그것만이 이 혼돈의 시대에 교회가 세상의 빛으로 서는 유일한 길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이사야 40:8)
이 두 사건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흩어지고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결코 흩어지지 않는 영원한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웅변적으로 증거하기 때문이다. 페로 제도의 성경 번역은 단순히 낡은 어휘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언어적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특정 시대나 문화에 박제된 화석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세대의 심장 속으로 흘러 들어가야 할 생명수임을 선포하는 신앙고백이다. 언어는 시대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그 그릇이 변할 때마다 새로운 그릇에 영원한 진리를 담아내는 수고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거룩한 책무이다.
16세기, 윌리엄 틴들은 당대의 공용어였던 라틴어 성경의 빗장을 풀고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다가 화형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는 “쟁기질하는 소년이 교황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걸었다. 그의 희생은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고, 평신도들의 손에 들린 자국어 성경은 영국의 역사를 바꾸는 영적 동력이 되었다. 페로 제도의 새 번역 성경 역시, 이 거룩한 전통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그들의 수고는 이 시대의 ‘쟁기질하는 소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생생한 음성으로 들려주려는 거룩한 열망의 산물이다.
바로 그 말씀의 능력이 우크라이나의 폐허 속에서 기적을 꽃피우고 있다. 미사일이 교회를 무너뜨리고 성도들을 흩어버렸지만, 그들의 심장에 새겨진 말씀은 빼앗지 못했다. 오히려 흩어진 성도들은 움직이는 교회가 되어 피난민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고,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세례를 베풀었다. 이는 박해를 피해 흩어진 초대교회 성도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세계 선교의 문을 열었던 사도행전의 역사가 오늘날 재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말씀 위에 선 사람들의 공동체이며, 그 공동체는 어떤 물리적 파괴로도 소멸될 수 없음을 증명한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불변하는 진리의 말씀을 어떻게 붙들고 있는가. 북아일랜드의 입법 시도와 같은 세속적 도전 앞에서, 우리는 성경적 가치를 선명히 변증하며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전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여성 리더십과 같은 내부적 논의 앞에서, 우리는 평등이라는 세속적 구호를 넘어 성경이 말하는 ‘동역’의 원리를 건강하게 세워가고 있는가. 모든 해답은 말씀 안에 있다. 한국 교회는 페로 제도의 번역가들처럼 시대의 언어로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고, 우크라이나 교회처럼 고난 속에서도 말씀의 능력을 살아내야 한다. 그것만이 이 혼돈의 시대에 교회가 세상의 빛으로 서는 유일한 길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이사야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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