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속의 등대, 교회의 두 가지 사명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6-02 07:10
본문
시대의 파고가 거세다. 국회 앞 광장을 가득 메운 5만 성도의 함성은 이 땅의 신앙 공동체가 느끼는 위기감의 온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근본부터 흔드는 악법의 시도 앞에서, 교회는 더 이상 침묵하는 양 떼가 될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동시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의 포성이 멎지 않으며 ‘칼로 선 자는 칼로 망하리라’는 주님의 경고가 살과 피로 증명되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세상은 안팎으로 신음하며 어둠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그러나 절망의 어둠이 짙을수록 빛의 가치는 더욱 선명해지는 법이다. 가장 세속화된 땅으로 여겨졌던 덴마크에서, 젊은이들이 다시 성경을 찾고 삶의 의미를 질문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깊은 밤의 어둠을 가르는 새벽 별과 같다. 이는 복음의 생명력이 인간의 제도나 문화적 조류에 의해 결코 소멸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표다. 교회의 본질적 힘은 세상의 권력과 맞서는 외적인 투쟁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한 영혼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룩한 갈망을 일깨우는 데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균형 잡힌 사명의 길을 가르친다. 18세기 영국, 윌리엄 윌버포스는 노예무역이라는 시대의 거대한 악에 맞서 40년이 넘는 고독한 의회 투쟁을 벌였다. 그의 투쟁은 단순한 정치 활동이 아니었다. 매일 새벽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클랩햄 공동체 동역자들과 함께 영적 힘을 공급받았던 깊은 신앙의 발로였다. 그는 광장의 투사였고 동시에 골방의 기도자였다. 사회적 악에 저항하는 공적 책임과, 개인의 삶을 통해 복음의 향기를 드러내는 내적 성숙을 분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윌버포스가 걸었던 그 길 위에 서 있다. 한 손에는 불의한 법과 제도에 맞서 진리를 외치는 예언자의 지팡이를, 다른 한 손에는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등불을 들어야 한다. 광장에서의 외침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축구선수 도리바의 친절함처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와야 한다. 세상을 향한 거룩한 저항과 세상을 품는 따뜻한 사랑, 이 두 가지 사명이 균형을 이룰 때 교회는 비로소 폭풍 속에서 길 잃은 영혼들을 인도하는 시대의 등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절망의 어둠이 짙을수록 빛의 가치는 더욱 선명해지는 법이다. 가장 세속화된 땅으로 여겨졌던 덴마크에서, 젊은이들이 다시 성경을 찾고 삶의 의미를 질문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깊은 밤의 어둠을 가르는 새벽 별과 같다. 이는 복음의 생명력이 인간의 제도나 문화적 조류에 의해 결코 소멸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표다. 교회의 본질적 힘은 세상의 권력과 맞서는 외적인 투쟁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한 영혼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룩한 갈망을 일깨우는 데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균형 잡힌 사명의 길을 가르친다. 18세기 영국, 윌리엄 윌버포스는 노예무역이라는 시대의 거대한 악에 맞서 40년이 넘는 고독한 의회 투쟁을 벌였다. 그의 투쟁은 단순한 정치 활동이 아니었다. 매일 새벽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클랩햄 공동체 동역자들과 함께 영적 힘을 공급받았던 깊은 신앙의 발로였다. 그는 광장의 투사였고 동시에 골방의 기도자였다. 사회적 악에 저항하는 공적 책임과, 개인의 삶을 통해 복음의 향기를 드러내는 내적 성숙을 분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윌버포스가 걸었던 그 길 위에 서 있다. 한 손에는 불의한 법과 제도에 맞서 진리를 외치는 예언자의 지팡이를, 다른 한 손에는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등불을 들어야 한다. 광장에서의 외침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축구선수 도리바의 친절함처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와야 한다. 세상을 향한 거룩한 저항과 세상을 품는 따뜻한 사랑, 이 두 가지 사명이 균형을 이룰 때 교회는 비로소 폭풍 속에서 길 잃은 영혼들을 인도하는 시대의 등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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