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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오디세이, 교회의 길을 묻다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8-13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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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오디세이는 은막 위에서 펼쳐질 준비를 하고, 다른 한 편의 오디세이는 북아프리카의 지하에서 고통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고대 서사시를 죄책감과 구원이라는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재해석한다는 소식은, 세속 문화의 중심에서 복음의 변증법적 힘을 증명할 기회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영웅 오디세우스의 여정이 신들의 변덕이 아닌, 한 인간의 실존적 고뇌와 죄의 결과로 그려질 때, 세상은 자신의 모습을 그 거울에 비추어 보게 될 것이다. 이는 문화라는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의 소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스크린 속 영웅의 귀향 서사에 감동할 때, 알제리의 올리브 나무 아래서 드려지는 성도들의 예배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여정은 문학적 상징이 아닌, 피와 눈물로 얼룩진 현실이다. 국가의 핍박 아래 교회가 문을 닫고, 성도들이 ‘내부 망명자’가 되어 흩어지는 현실은 이 시대의 교회가 마주한 가장 비극적인 오디세이다. 그들은 사이렌의 유혹이나 키클롭스의 위협이 아닌, 신앙을 포기하라는 세상의 압박과 싸우며 천성을 향한 험난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일찍이 C.S.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를 통해, J.R.R.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통해 장엄한 서사 속에 기독교적 진리를 녹여내어 세속 사회의 영적 공허함을 파고들었다. 이처럼 교회는 세상의 언어로 복음을 번역하여 문화의 변혁을 이끄는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동시에, 교회는 고통받는 지체들의 신음 소리에 귀를 닫아서는 안 된다. 오디세우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베를 짜던 페넬로페처럼, 한국 교회는 핍박받는 형제들을 위해 기도의 씨실과 날실을 엮어야 하며, 아버지를 찾아 나선 텔레마코스처럼 그들을 돕기 위한 실제적인 방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

결국 모든 성도의 삶은 본향을 향한 기나긴 여정이다. 성경은 우리를 이 땅의 나그네라 증언한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1:13-16). 영화 속 오디세이와 알제리의 오디세이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어디를 향해, 어떻게 항해하고 있는가. 그 대답이 한국 교회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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