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의 검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 논평 > 한국교회공보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논평

HOME  >  오피니언  >  논평

카이사르의 검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5-27 00:22

본문

최근 미국과 유럽 일부에서 기독교 신앙을 민족주의적 정치 이념과 결합하려는 ‘기독교 민족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특정 정치 지도자를 ‘기독교 문명’의 수호자로 추앙하고, 신앙을 정치적 분노와 적대감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현상은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이는 복음의 심장을 겨누는 칼날이며, 교회의 정체성을 뿌리부터 흔드는 배교적 행태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가 ‘하나님의 도성(Civitas Dei)’과 ‘인간의 도성(Civitas Terrena)’을 혼동할 때 발생하는 필연적 비극이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저서 『신국론』에서 이 두 도성을 명확히 구분했다. 하나님의 도성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결속된 공동체이며, 그 목적은 영원한 평화에 있다. 반면, 인간의 도성은 자기를 향한 사랑과 권력욕으로 움직이며, 지상의 일시적 안정을 추구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도성에 속한 순례자 공동체로서, 인간의 도성 안에서 살아가지만 그 논리와 가치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 민족주의는 바로 이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교회를 인간의 도성을 지배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키고, 십자가를 카이사르의 검으로 바꾸어 든다. 사랑과 용서, 화평의 복음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증오와 배제, 권력 투쟁의 논리가 차지하게 된다. 그리하여 교회는 더 이상 만인을 향한 구원의 방주가 아니라,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 단체로 변질되고 만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빌라도 총독 앞에서 자신의 왕권에 대해 분명히 증언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한복음 18:36). 그리스도의 나라는 세상의 방식, 즉 힘과 폭력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십자가의 자기희생과 부활의 능력으로 임하는 나라다.

따라서 교회가 정치권력과 야합하여 ‘기독교 국가’를 건설하려는 모든 시도는 근본적으로 비성경적이다. 교회는 세상을 힘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카이사르의 검을 탐하는 순간,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버리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서구 교회의 이러한 그릇된 흐름을 반면교사로 삼아, 오직 복음의 능력 위에 굳건히 서는 지혜와 용기를 구해야 할 때다.
기사 공유하기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