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본질, 앙금을 남기지 않는 사랑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8-24 07:10
본문
폴 애징거의 삶을 조명한 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진정한 용서는 마음에 앙금이 남지 않아야 한다’는 통찰이다. 이는 세상이 말하는 심리적 해소로서의 용서와, 성경이 가르치는 신적인 용서의 근본적인 차이를 명확히 드러낸다. 세상은 종종 ‘나 자신을 위해’ 용서하라고 말한다. 분노와 미움이 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 치유의 한 방편으로 용서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용서는 종종 기억의 창고에 상대의 잘못을 보관해 둔 채, 단지 꺼내보지 않기로 결정하는 미봉책에 그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용서는 그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나의 유익이 아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어떻게 용서하셨는가에 그 뿌리를 둔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미리엘 주교가 보여준 용서가 바로 그 본질을 보여준다. 주교는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온 장발장의 증오와 불신에 맞서, 그가 훔친 은촛대마저 선물하며 그의 죄를 덮어준다. 이것은 단순한 관용이 아니었다. 주교의 용서는 장발장의 영혼을 하나님께 바치게 하는, 그의 전 인생을 뒤바꾸는 창조적인 능력이었다. 그 용서에는 어떠한 ‘앙금’도, 어떠한 조건도 없었다. 오직 한 영혼을 구원하려는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존재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볼 때, 우리는 얼마나 자주 ‘앙금’이 남는 용서를 해왔는가. 입술로는 용서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상대의 빚을 계산하고, 관계 속에서 여전히 그 빚을 상기시키며 우위를 점하려 하지는 않았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쓴 뿌리’가 나서 많은 사람을 더럽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원망의 앙금이야말로 공동체를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독소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기억조차 하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셨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용서의 원형이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31-32). 진정한 용서는 인간의 노력으로 불가능한,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신적인 행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값없는 용서의 감격이 우리 안에 살아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앙금 없는 사랑으로 서로를 용서하며 온전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용서는 그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나의 유익이 아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어떻게 용서하셨는가에 그 뿌리를 둔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미리엘 주교가 보여준 용서가 바로 그 본질을 보여준다. 주교는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온 장발장의 증오와 불신에 맞서, 그가 훔친 은촛대마저 선물하며 그의 죄를 덮어준다. 이것은 단순한 관용이 아니었다. 주교의 용서는 장발장의 영혼을 하나님께 바치게 하는, 그의 전 인생을 뒤바꾸는 창조적인 능력이었다. 그 용서에는 어떠한 ‘앙금’도, 어떠한 조건도 없었다. 오직 한 영혼을 구원하려는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존재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볼 때, 우리는 얼마나 자주 ‘앙금’이 남는 용서를 해왔는가. 입술로는 용서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상대의 빚을 계산하고, 관계 속에서 여전히 그 빚을 상기시키며 우위를 점하려 하지는 않았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쓴 뿌리’가 나서 많은 사람을 더럽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원망의 앙금이야말로 공동체를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독소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기억조차 하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셨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용서의 원형이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31-32). 진정한 용서는 인간의 노력으로 불가능한,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신적인 행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값없는 용서의 감격이 우리 안에 살아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앙금 없는 사랑으로 서로를 용서하며 온전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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