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산의 신기루, 바벨탑의 그림자 > 논평 > 한국교회공보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논평

HOME  >  오피니언  >  논평

일곱 산의 신기루, 바벨탑의 그림자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8-25 07:10

본문

최근 일부 기독교계에서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일곱 산 통치 신학’은 사회의 7개 주요 영역(정부, 경제, 교육, 미디어, 예술, 종교, 가정)을 기독교인이 장악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상을 변혁하려는 열정은 높이 살 만하나, 그 신학적 전제와 방법론은 심각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마치 광야의 신기루처럼 성경적 실체가 없는 허상을 좇는 것이며, 그 끝에는 교만과 분열이라는 바벨탑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 주장의 가장 큰 맹점은 브루스 배런이 지적했듯, 기독교인의 신앙이 세속적 전문성을 자동으로 보장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는 오만한 가정에 있다. 실력 있는 비기독교인 의사보다 신앙은 좋으나 미숙한 기독교인 의사에게 생명을 맡길 사람은 없다. 이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을 부정하는 심각한 신학적 왜곡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뿐 아니라 불신자에게도 재능과 지혜를 주셔서 이 세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신다. 기독교인의 정체성은 전문성을 대체하는 ‘자격’이 아니라,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발휘되어야 할 ‘책임’의 근거가 된다.

이러한 통치 신학의 위험성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대심문관의 모습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심문관은 예수가 인류에게 감당 못 할 자유를 주었다고 비판하며, 자신은 기적과 신비, 권위를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고 지배함으로써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인류를 사랑한다는 명분 아래 그리스도의 방식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인간적인 힘의 논리를 신봉한다. ‘일곱 산’을 정복하여 세상을 통치하겠다는 발상 역시, 섬김과 희생이라는 그리스도의 길을 버리고 세상적인 힘과 권위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는 대심문관의 교만과 맞닿아 있다.

성경이 제시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지배가 아닌 섬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으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세상을 구원하셨다. 교회의 영향력은 세속 권력의 정점을 차지함으로써가 아니라,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발휘된다. ‘일곱 산’이라는 인간적인 구호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자기 비움의 길을 묵묵히 따르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사명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지심이라” (빌립보서 2:5-8)
기사 공유하기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