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의 황혼, 진리의 푯대를 다시 세울 때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6-04 07:10
본문
세계 성공회의 분열은 단순히 교단 내의 정치적 갈등이 아니라, 서구 교회가 직면한 신학적 파산의 명백한 증거다. 수백 년간 세계 성공회의 영적 구심점 역할을 해 온 캔터베리 대주교의 권위가 더는 성경적 정통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Gafcon 소속 주교들의 선언은, 교회의 정체성이 역사적 전통이나 인간적 권위가 아닌 오직 ‘기록된 말씀’에 근거해야 함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동성애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근본적인 질문은 ‘성경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의 유일하고 최종적인 권위인가’ 하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과 문화적 압력에 굴복하여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을 재해석하거나 폐기하려는 시도는 교회의 기초를 허무는 행위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는 주님의 경고가 현실이 된 것이다.
교회사는 진리를 위한 거룩한 투쟁의 역사였다. 4세기 아리우스주의가 ‘예수는 피조물’이라는 이단적 사상으로 교회를 휩쓸었을 때, 아타나시우스는 홀로 ‘아타나시우스 콘트라 문둠(Athanasius contra mundum)’, 즉 ‘세상을 대항하는 아타나시우스’로 불리며 끝까지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변호했다. 그는 수차례 유배를 당하고 외면받았지만, 그의 신학적 투쟁이 있었기에 니케아 신조의 정통 신앙이 보존될 수 있었다. 아타나시우스에게 교회는 다수의 의견이나 황제의 권력이 아닌, 오직 진리 위에 서는 것이었다.
오늘날 Gafcon의 주교들은 현대의 아타나시우스가 되어, 세속주의의 거센 파도에 맞서 진리의 방주를 지키려 하고 있다. 그들은 캔터베리와의 결별이 가져올 조직적 손실과 세상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로 결단했다. 이는 분열이 아니라,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한 성경적 분리(Biblical Separation)이다.
이 사건은 한국 교회에도 준엄한 경고를 보낸다. 서구 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우리는 신학적 자유주의와 종교다원주의, 세속적 인본주의의 누룩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하나님의 권위를 잃고 인간의 지혜나 윤리적 교훈으로 전락하는 순간, 교회는 더 이상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그리스도의 몸이 될 수 없다.
주님은 약속하셨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6:18). 이 반석은 베드로라는 개인이 아니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그의 신앙고백, 즉 진리의 말씀이다. 캔터베리의 권위가 저물어 가는 황혼의 시대에, 한국 교회는 다시 한번 이 진리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등대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동성애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근본적인 질문은 ‘성경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의 유일하고 최종적인 권위인가’ 하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과 문화적 압력에 굴복하여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을 재해석하거나 폐기하려는 시도는 교회의 기초를 허무는 행위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는 주님의 경고가 현실이 된 것이다.
교회사는 진리를 위한 거룩한 투쟁의 역사였다. 4세기 아리우스주의가 ‘예수는 피조물’이라는 이단적 사상으로 교회를 휩쓸었을 때, 아타나시우스는 홀로 ‘아타나시우스 콘트라 문둠(Athanasius contra mundum)’, 즉 ‘세상을 대항하는 아타나시우스’로 불리며 끝까지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변호했다. 그는 수차례 유배를 당하고 외면받았지만, 그의 신학적 투쟁이 있었기에 니케아 신조의 정통 신앙이 보존될 수 있었다. 아타나시우스에게 교회는 다수의 의견이나 황제의 권력이 아닌, 오직 진리 위에 서는 것이었다.
오늘날 Gafcon의 주교들은 현대의 아타나시우스가 되어, 세속주의의 거센 파도에 맞서 진리의 방주를 지키려 하고 있다. 그들은 캔터베리와의 결별이 가져올 조직적 손실과 세상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로 결단했다. 이는 분열이 아니라,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한 성경적 분리(Biblical Separation)이다.
이 사건은 한국 교회에도 준엄한 경고를 보낸다. 서구 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우리는 신학적 자유주의와 종교다원주의, 세속적 인본주의의 누룩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하나님의 권위를 잃고 인간의 지혜나 윤리적 교훈으로 전락하는 순간, 교회는 더 이상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그리스도의 몸이 될 수 없다.
주님은 약속하셨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6:18). 이 반석은 베드로라는 개인이 아니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그의 신앙고백, 즉 진리의 말씀이다. 캔터베리의 권위가 저물어 가는 황혼의 시대에, 한국 교회는 다시 한번 이 진리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등대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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