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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진리의 억압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9-19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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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일랜드에서 통과된 '정체성과 언어법'은 표면적으로는 다양한 문화와 정체성에 대한 존중을 표방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위협하는 심각한 독소가 숨어 있다. 이 법은 모든 종교적 신념을 '동등하게 유효하고 선하며 진실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김으로써, 진리의 유일성을 고백하는 교회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관용(tolerance)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가치를 평준화시켜 진리의 개념 자체를 해체하려는 '포스트모던적 억압'에 가깝다. 참된 관용이란 내가 동의하지 않는 신념이나 사상을 가진 사람의 인격과 자유를 존중하고, 그가 자신의 신념을 표현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이 추구하는 바는 신념의 '표현'을 넘어 신념의 '내용'까지 동등하게 가치 있다고 인정하라는 강요다.

19세기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저서 『자유론』(On Liberty)에서, 설령 어떤 의견이 틀렸다고 확신하더라도 그것을 침묵시켜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는 진리가 오류와의 충돌과 논쟁을 통해 더욱 생생하고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보았다. 절대다수가 공유하는 의견이라 할지라도, 소수의 반대 의견을 억압하는 사회는 지적 활력을 잃고 독단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양성 존중'을 내세우는 북아일랜드의 법안은 밀이 경계했던 바로 그 '다수의 횡포'를 법제화하여, 진리에 대한 자유로운 탐구와 논쟁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만약 이 법의 논리대로라면, 기독교인이 타 종교나 무신론을 향해 유일한 구원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다고 선포하는 것은 다른 신념을 동등하게 존중하지 않는 '차별'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이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근본적으로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교회는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진리와 비진리는 명확히 분별해야 할 의무가 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되, 모든 사상을 동등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것은 단순히 북아일랜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차별금지법과 혐오표현 방지법의 흐름 속에 동일한 논리가 스며들어 있다. 교회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맞서 성경적 진리를 분명히 선포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이 진리를 부끄러워하거나 세상의 압력에 굴복하여 희석시켜서는 안 된다. 관용의 이름으로 진리를 억압하려는 시도에 맞서, 교회는 더욱 담대하게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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