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환대, ‘기억’에서 피어나는 사랑 > 논평 > 한국교회공보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논평

HOME  >  오피니언  >  논평

성경적 환대, ‘기억’에서 피어나는 사랑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9-21 07:10

본문

영화 ‘오디세이’가 제시한 ‘제우스의 법’, 즉 낯선 이가 변장한 신일 수 있다는 두려움에 기반한 환대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자기 보존 본능과 종교심이 결합된 형태다. 이는 고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제였을지 모르나, 그 동기의 본질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내가 베푸는 친절의 목적이 결국 나에게 돌아올 보상이나 내가 피할 수 있는 재앙에 있다면, 그 환대는 또 다른 형태의 거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환대는 그 출발점과 지향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미리엘 주교가 장발장에게 베푼 환대를 떠올려보라. 주교는 굶주리고 지친 전과자 장발장에게서 미래의 시장이나 잠재적 신의 모습을 보지 않았다. 그는 그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나 세상에서 상처 입고 소외된 한 영혼을 보았을 뿐이다. 은촛대를 훔쳐 달아난 장발장을 붙잡아 온 경찰에게 “내가 그에게 준 것”이라며 그를 변호하고, “이 은그릇을 가지고 가서 정직한 사람이 되는 데 사용하시오”라고 말하는 주교의 모습은 ‘제우스의 법’을 초월하는 기독교적 사랑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환대는 계산이 아닌 은혜이며, 거래가 아닌 선물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무조건적인 사랑이 장발장의 얼어붙은 영혼을 녹이고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변화의 시작이 되었다.

성경은 이러한 환대의 신학적 근거를 하나님의 명령과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적 경험, 즉 ‘기억’에서 찾는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자기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다.

“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음이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33-34).

여기서 환대의 이유는 ‘그가 신일지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도 한때 그와 같은 나그네였기 때문’이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비참한 신세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이웃 사랑의 동력이 된다. 즉, 성경적 환대는 내가 과거에 받은 은혜를 현재의 타인에게 흘려보내는 기억의 실천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턱은 누구를 향해 열려 있는가. 우리의 환대가 여전히 영향력과 유익을 따지는 ‘제우스의 법’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애굽의 나그네였음을 망각한 것이다. 교회의 참된 부흥은 우리가 구원받은 죄인이요, 은혜 입은 나그네라는 정체성을 회복하고, 그 기억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으로 세상의 소외된 이들을 조건 없이 끌어안을 때 시작될 것이다.
기사 공유하기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