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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라는 우상, '신실함'이라는 소명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10-17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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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과달라하라에 모인 기독 경영인들이 던진 '신실하게 관리하라'는 주제는 이 시대 교회를 향한 날카로운 질문이자 준엄한 도전이다. 세상은 더 높은 성장률, 더 큰 건물, 더 많은 사람이라는 '성공'의 언어로 가치를 측정한다. 불행히도, 이러한 세속적 성공주의는 강단과 신학교, 교회의 모든 사역 현장에 깊이 스며들어, 복음의 본질을 흐리고 성도들을 거짓된 경쟁으로 내몰아왔다.

성경이 말하는 가치는 성공(Success)이 아닌 신실함(Faithfulness)이다. 성공이 결과 중심의 개념이라면, 신실함은 과정과 동기를 중시하는 관계적 개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대한 성공을 약속하신 적이 없다. 다만 우리가 맡은 작은 일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라고 명령하셨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는 이 진리를 명확히 보여준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종에게 똑같은 칭찬을 건넨다. 그들의 성과가 아니라, 주인의 뜻을 따라 최선을 다한 그들의 신실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태복음 25:21). 주인의 칭찬은 '잘했다, 성공한 종아'가 아니었다.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였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 체계가 세상과 어떻게 근본적으로 다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의 삶은 '신실함'의 위대한 예화다. 그는 18세기 영국 사회의 거대한 악, 노예무역을 폐지하기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쳤다. 수십 년간 그는 의회에서 조롱과 멸시를 당하며 번번이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는 오랜 기간 '실패한'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신실하게 순종했다. 그의 끈질긴 충성심은 마침내 영국의 양심을 움직였고, 1807년 노예무역 폐지법안 통과라는 거대한 열매를 맺었다. 그의 승리는 성공을 향한 집착이 아닌, 신실함을 향한 헌신이 빚어낸 결과였다.

한국 교회는 이제 '성공'이라는 우상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목회자의 능력이 교인의 숫자로 평가되고, 장로의 직분이 사회적 지위와 부로 결정되는 풍토는 없는가. 교회의 사명이 건물 건축과 재정 확보에 매몰되어, 가난한 이웃과 사회적 약자를 향한 신실한 섬김을 잊지는 않았는가. 스페인과 바르셀로나의 기독 경영인들이 '사회적 가치'와 '윤리'를 고민하는 것은, 비즈니스 영역에서조차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제 교회는 세상의 성공 신화를 모방하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 나라의 대안적 가치인 '신실함'을 선포하고 살아내야 한다. 크고 화려한 사역이 아닐지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묵묵히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야말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성공한 이들이다. 교회의 참된 부흥은 외적인 성장이 아니라, 이러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길러내는 거룩한 소명의 회복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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