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삼킨 탐욕,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다 > 논평 > 한국교회공보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논평

HOME  >  오피니언  >  논평

달을 삼킨 탐욕,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다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10-21 07:10

본문

1504년 2월 29일, 달이 핏빛으로 물들었을 때 자메이카의 타이노족은 공포에 떨었다. 그들 앞에 선 콜럼버스는 이 현상이 자신이 믿는 신의 분노 때문이라 선언했고, 굶주림에 지쳐있던 그의 선원들은 다시 식량을 공급받게 되었다. 이 일화는 한 개인의 기지로 위기를 극복한 영웅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어 자신의 탐욕을 채운 신성모독의 기록이다.

콜럼버스는 천체의 운행이라는 과학적 지식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만 내린 특별 계시인 것처럼 포장했다. 그는 무지한 원주민들의 두려움을 이용해 그들을 통제하고 착취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지식을 허락하신 목적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위다. 지식은 창조 세계의 신비를 깨달아 창조주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데 사용되어야 할 거룩한 도구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손에 들린 지식은 이웃을 위협하는 칼이 되었고, 하나님의 이름은 이기심을 정당화하는 가면이 되었다.

이 사건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대심문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대심문관은 예수가 인간에게 감당할 수 없는 자유를 주었다고 비판하며, 자신은 기적과 신비, 권위를 이용해 사람들을 ‘행복한 노예’로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인류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진리를 왜곡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반한다. 콜럼버스가 ‘생존’이라는 명분 아래 월식을 ‘신의 분노’로 둔갑시킨 행위 역시, 대심문관의 논리와 정확히 같은 궤를 그리고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위험한 신념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힌 것이다.

성경은 이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다. 십계명의 제3계명은 분명히 선포한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 20:7).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은 단순히 입술로 그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을 속이며, 불의를 행하는 모든 것이 바로 이 계명을 어기는 죄악이다. 콜럼버스는 달을 가려 자신의 배를 채웠을지 모르나, 그 행위로 인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죄의 낙인을 스스로에게 새겼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콜럼버스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운가. 교회의 성장과 부흥이라는 명분 아래, 세상적인 성공과 번영을 하나님의 축복과 동일시하며 성도들을 기만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구실로 불의한 방법과 타협하며 교회의 외형을 키우는 데 급급하지는 않은가. 핏빛으로 물든 달은 500년 전의 밤하늘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에도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고 있는가.
기사 공유하기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