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TV칼럼] 깨진 토기에도 담기는 영광
김의선 목사 기자
작성일 2026-10-19 07:10
본문
살다 보면 정성껏 쌓아 올린 탑이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하곤 합니다. 야심 차게 시작한 계획이 사소한 실수 하나로 어그러지고,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믿었던 무대에서 예상치 못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요. 그럴 때면 우리는 깊은 자괴감에 빠지곤 합니다. 마치 시드니 올림픽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위해 달리다 길을 잃었던 어느 성화 봉송 주자처럼 말입니다.
한 기독교 매체에 실린 글을 읽으며 깊은 공감을 했습니다. 인류의 화합과 영광을 상징하는 올림픽 성화 봉송이 길을 잃고, 도난 위협에 처하고, 심지어 비극적인 사고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인생을 꼭 닮았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삶이라는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주인공이 되길 꿈꾸지만, 현실은 실수와 실패, 연약함으로 가득한 순간들의 연속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잠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십시오. 어김없이 떠오르는 아침 해와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은 단 한 번도 자신의 경로를 이탈한 적이 없습니다. 들에 핀 작은 꽃 한 송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마다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납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이처럼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질서와 영광을 묵묵히 드러냅니다. 인간의 요란한 계획과 그 불완전함이 하나님의 고요하고 완벽한 솜씨와 얼마나 대조적인지요.
일본에는 ‘킨츠기(金継ぎ)’라는 전통적인 도자기 복원 기법이 있습니다.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옻으로 붙이고, 그 이음매를 금가루로 칠해 마무리하는 방식입니다. 킨츠기를 거친 도자기는 깨지기 전보다 더 독특하고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재탄생합니다. 숨기고 싶은 상처와 균열의 흔적이 오히려 그릇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금빛 선이 되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삶의 무대에서 넘어져 깨진 조각처럼 느껴지십니까? 괜찮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는 부끄러운 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금가루가 칠해질 바로 그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를 위로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7). 우리의 가치는 완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 안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배를 담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완벽한 성화 봉송 주자가 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길을 잃고 넘어져도 좋습니다. 우리의 깨어진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그리스도의 빛이, 세상 그 어떤 완벽한 영광보다 더 밝고 따뜻하게 세상을 비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기독교 매체에 실린 글을 읽으며 깊은 공감을 했습니다. 인류의 화합과 영광을 상징하는 올림픽 성화 봉송이 길을 잃고, 도난 위협에 처하고, 심지어 비극적인 사고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인생을 꼭 닮았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삶이라는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주인공이 되길 꿈꾸지만, 현실은 실수와 실패, 연약함으로 가득한 순간들의 연속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잠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십시오. 어김없이 떠오르는 아침 해와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은 단 한 번도 자신의 경로를 이탈한 적이 없습니다. 들에 핀 작은 꽃 한 송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마다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납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이처럼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질서와 영광을 묵묵히 드러냅니다. 인간의 요란한 계획과 그 불완전함이 하나님의 고요하고 완벽한 솜씨와 얼마나 대조적인지요.
일본에는 ‘킨츠기(金継ぎ)’라는 전통적인 도자기 복원 기법이 있습니다.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옻으로 붙이고, 그 이음매를 금가루로 칠해 마무리하는 방식입니다. 킨츠기를 거친 도자기는 깨지기 전보다 더 독특하고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재탄생합니다. 숨기고 싶은 상처와 균열의 흔적이 오히려 그릇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금빛 선이 되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삶의 무대에서 넘어져 깨진 조각처럼 느껴지십니까? 괜찮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는 부끄러운 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금가루가 칠해질 바로 그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를 위로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7). 우리의 가치는 완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 안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배를 담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완벽한 성화 봉송 주자가 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길을 잃고 넘어져도 좋습니다. 우리의 깨어진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그리스도의 빛이, 세상 그 어떤 완벽한 영광보다 더 밝고 따뜻하게 세상을 비출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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