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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V칼럼] 같은 믿음, 다른 인생 — 아브라함과 롯이 남긴 질문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10-19 11: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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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9장에 등장하는 롯을 보면 과연 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에 찾아온 두 천사를 성폭행하려 했을 때, 롯은 자신의 두 딸을 대신 내어주겠다고 제안했다. 도저히 정당화할 수 없는 행동이다. 소돔이 멸망할 것이라는 경고를 사위들에게 전했을 때도 그들은 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다. 그의 영적 영향력이 얼마나 미약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놀랍게도 베드로는 롯을 “의로운 롯”(벧후 2:7), “이 의인”, “그 의로운 심령”(벧후 2:8)이라고 표현한다. 두 구절에서 세 차례나 의인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베드로는 롯이 소돔 사람들의 죄악을 보고 들으면서 날마다 고통받았다고 설명한다. 창세기가 롯의 영적인 연약함을 보여준다면, 베드로후서는 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어 의로움을 드러낸다.

같은 믿음, 그러나 서로 다른 선택

롯도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구약과 신약을 막론하고 구원의 궁극적인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다. 구약의 성도들은 당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믿었고, 그 약속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히 9:15).

아브라함도 믿음의 사람이었고 롯도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삶은 전혀 다른 열매를 맺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 롯도 동행했지만, 성경은 그가 아브라함과 동일한 방식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기록하지 않는다.

이는 신약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무리의 차이를 생각하게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중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있었다.

창세기 13장에서 롯은 눈을 들어 풍요로운 요단 지역을 바라보고 그곳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1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약속의 땅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다.

롯은 자신의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라보았다.

오늘 우리도 무엇이 더 유익하고 풍요로운가를 생각하면서, 그 선택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간과할 때가 많다.

아브라함의 제단과 롯의 소돔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 벧엘에서도, 헤브론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했다. 반면 창세기에는 롯이 제단을 쌓았다는 기록이 없다.

이것이 롯에게 예배가 전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삶을 묘사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아브라함의 삶의 중심에는 제단이 있었고, 롯의 삶의 중심에는 소돔이 있었다.

창세기 18장에서 하나님께서 소돔의 심판을 알려주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 성을 위해 중보했다. 반면 롯은 심판의 경고를 듣고도 지체하다가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 구출되었다.

창세기 19장 29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기억하셔서 롯을 멸망 가운데서 내보내셨다고 기록한다.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이었다. 롯은 하나님의 긍휼과 아브라함의 중보에 힘입어 구출된 사람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주로 다른 사람의 기도와 영적인 돌봄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사람인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중보하는 삶이 우리의 부르심이다.

구원받은 인생, 마지막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

롯은 소돔에서 구출되었지만, 그곳에서 쌓아 올린 삶의 기반은 불타 버렸다.

이 장면은 고린도전서 3장 12–15절을 떠올리게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세운 공적이 불로 시험받으며, 공적이 불타 없어져도 자신은 구원받는 경우가 있다고 말씀한다. 물론 이 말씀은 본래 교회를 세우는 사역에 관한 것으로 롯의 사건을 직접 해석한 구절은 아니다.

그러나 두 본문은 우리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구원받은 우리의 인생에서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무엇인가?

구원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나는 주님을 따르는 삶을 설명하면서 '희생'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지 않는다. 나를 위해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께 삶을 드리는 것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은혜에 대한 사랑의 응답이며 영광스러운 특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에 주님께 삶을 드리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 3:9).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믿음의 복에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단지 심판을 면하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다른 사람에게 복을 흘려보내는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구원받았다는 사실에만 머물 것인가, 아니면 구원받은 생명을 주님께 드릴 것인가?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는 오늘도 우리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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